공시가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시가 20억원 안팎의 아파트를 보유한 사람들은 1년에 1500만∼2000만원의 보유세를 내야 한다. 억대 연봉자라면 몰라도 일반 직장인의 월급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1. 금융회사에 다니는 정기태(38·가명) 과장은 신혼초인 지난 2000년 강남의 한 재건축 아파트를 매입해 단숨에 20억원 자산가 대열에 올라선 주인공이다.
정 과장은 재건축 추가부담금 1억3000만원을 더 내고 2006년 도곡렉슬 143㎡에 입주했다. 이 아파트의 매매가는 현재 18억∼20억원을 호가하니 매입비용을 제외하고도 15억원 안팎의 시세 차익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새 아파트에 입주했다는 기쁨은 잠시 뿐이었다. 입주 첫해부터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해 1000만원이 넘는 보유세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부인이 자녀들 교육을 위해 직장을 그만둔 외벌이 가장에게 1000만원은 큰 돈이었다. 방법이 없어 연금을 해약해 세금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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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2년차인 지난해에는 1500만원이 넘는 보유세를 냈다. 결국 정 과장의 부인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정 과장의 월급만으론 자녀 둘 키우고, 지방에 계신 부모님 용돈 드리고, 수천만원의 세금까지 내기가 버거웠다. 맞벌이로 수입이 늘긴 했지만 샐러리맨 입장에서 매년 1500만원 안팎의 거금을 세금으로 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축은 꿈도 못 꾼다.
요즘은 세금 걱정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집을 전세(5억8000만∼6억원)로 내놓고 같은 단지에서 가장 작은 86㎡나 분당의 90㎡대 아파트 전세로 옮기면 2억5000만∼3억원의 차익이 생긴다. 이 돈을 금융상품에 넣어 놓고 이자를 받으면 세금을 충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2. 중학교 교사인 민수희(45·가명)씨는 직장과 가까운 곳에 아파트를 마련했다가 집값이 뛰어 자산이 불어난 케이스. 민씨는 1993년 결혼하면서 학교와 가까운 대치동 주공1차(현재 대치동 동부센트레빌) 43㎡를 1억2000만원에 구입했다. 지난 2005년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값은 현재 18억∼20억원선이다.
하지만 민씨는 몇달 전 집을 내놨다. 교사 월급만으로 매년 천만원이 넘는 세금을 도저히 낼 수 없어서다. 민씨의 남편은 몇년전 직장을 관두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빚만 지고 회사 문을 닫았다.
2006년엔 미리 준비했던 돈으로 세금을 냈지만 지난해에는 세금 낼 돈이 없어 교직원공제회에서 대출을 받았다. 세금 부담에 쩔쩔 매느니 차라리 집을 처분하기로 했지만 그마저 쉽지 않다. 시세보다 싼 값에 내놨지만 몇달째 집구경 오는 사람이 없다. 이달말까지 집이 팔리지 않으면 올해도 돈을 빌려 세금을 내야한다.
#3. 공기업에 다니는 백현구(40·가명)씨는 직장 동료를 따라 부동산을 찾았다가 잠실 재건축아파트를 매입해 '강부자' 대열에 합류했다. 백씨는 2001년 잠실 주공4단지(현재 레이크팰리스) 56㎡를 전세(7000만원)를 끼고 4억3000만원에 매입했다.
당시 백씨가 모아둔 돈은 1억원 뿐이어서 나머지는 돈은 대출을 받았다. 이후 중도금 대출을 받아 추가부담금 4억여원을 더 내고 167㎡를 배정받았다. 금융비용까지 더하면 총 9억5000만원이 들었다. 이 아파트는 현재 매매가 18∼22억원을 호가한다.
레이크팰리스는 2006년 12월 입주했지만 백씨는 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전세를 놨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목동 아파트 전세금을 빼도 레이크팰리스 잔금 치를 돈이 3억원 정도 부족했다.
백씨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산 세월이 자그마치 8년. 대출금을 거의 다 갚고 이제 허리 좀 펴나했더니 이젠 1년에 1500만원에 달하는 보유세가 기다리고 있다. 아파트를 처분해 여유있게 살고 싶지만 양도세로 수억원을 낼 생각하면 도저히 매도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다른 건 몰라도 집 한채는 있어야 든든할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