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대북지원 어떡하나' 속 타내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2008.05.1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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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시, 임기내 북핵 해결 위한 당근 제시
- 북, 통미봉남 전략으로 식량·안보 일괄타결
- 李정부 '북 요청 없이 먼저 나서긴 곤란'

靑, '대북지원 어떡하나' 속 타내


청와대가 대북 식량지원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북핵 문제의 급속 해결 조짐과 함께 미국이 북한에 옥수수 등 식량 50만톤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입장이 애매해진 것이다.



북한이 남측을 배제한 채 미국과 직접 통하며(통미봉남) 화해 모드로 나갈 경우 새 정부 들어 미묘한 신경전을 벌여온 이명박 정부로서는 북한 문제에서의 국제적 입지가 빠르게 좁아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북한의 공식 지원 요청이 있어야 식량 등을 지원하겠다는 원칙을 스스로 깨는 것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더구나 새 정부는 대북 상호주의를 내세우며 지난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지원 정책에 대해 '퍼주기'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 美, 부시 임기내 북한 문제 해결 의지=최근 북·미 관계는 급속한 화해모드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은 이달초 대북 식량지원을 위한 대표단을 북한에 파견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13일 "구체적인 대북 식량지원계획을 조율하고 있으며 수일 내로 '모종의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이와 함께 북핵신고의 마무리국면에서 테러지원국 해제 추진과 비정부기구(NGO)를 통한 대북 의료지원까지 대북 유화정책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부시 행정부가 수렁으로 빠져드는 이라크 문제 등 중동 사태와 달리 가시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북핵 문제에 주력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북한도 1만8000쪽에 달하는 북핵 자료를 제공하는 등 이른바 핵 신고 협의에서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로 볼 때 조만간 6자회담이 재개돼 비핵화 2단계(불능화와 핵신고) 조치가 마무리되고 신고 내용을 검증하고 나아가 핵폐기라는 비핵화 3단계로 진입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이런 전망이 현실화되면 부시 대통령은 임기내 북핵 문제 진전이라는 성과를 거두고 북한도 그동안 주장해 오던 북미관계 정상화 진전과 동시에 식량 문제 해결이라는 부산물을 얻게 된다. 양자간 계산이 들어맞는 셈법이다.

◇靑, 안하자니 그렇고 하자니 또 그렇고= 북·미 대화가 진전을 이루며 미국이 북한에 식량 지원 의사를 표명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의 입장은 난감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5일 기자들과 만나 "여건이 되면 언제라도 대북 인도적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여건'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아직까지 북측으로부터 지원요청은 없었다"고만 답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연세대에서 열린 '국제기구 진출 설명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북한하고 기회가 되면 직접 협의를 할 생각"이라며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기근이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면밀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식량난이 더 심화되기 전에 식량지원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내에서는 대북 지원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여러 조건을 따지지 말고 우리 동포를 위한 인도적 견지에서 식량이 제공 될 수 있도록 검토해 주길 바란다"며 대북 지원을 촉구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정부는 일단 북한의 식량 지원 문제가 인도적 문제인 만큼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북한으로부터 공식 지원 요청이 들어오기만 하면 명분과 체면도 지킬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를 상대로 통미봉남 전술을 구사하려는 북한이 과연 지원요청을 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것이다. 정부의 고심이 깊어지는 부분이다.



북한은 이 대통령이 방미 순방에서 '남북간 직접연락사무소 설치'를 제안한데 대해 지난달 26일 노동신문을 통해 가차없이 거부했다. 앞서 지난 총선 전에는 서해안에 미사일을 발사하고 개성공단의 남측 요원들을 철수시키며 대립각을 세워왔다.

정부의 고심과는 별도로 한반도 상황은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14년만에 북핵 진전의 호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북핵문제의 더 큰 진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할 한국 정부의 '실용외교'는 설 곳을 찾지 못하고 빙빙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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