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추억과 애플와인 칼바도스

전두환 신한카드 부사장 2008.05.2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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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전두환의 '나의 와인스토리'

요즈음은 우리나라 기후의 아열대화로 강원도 홍천까지 사과재배지가 되지만 필자의 초등학생 시절인 60년대만 해도 사과집산지는 단연 대구였다. 취직 후 서울생활을 시작할 무렵 애로사항중의 하나는 비타민처럼 매일 몇알 먹어야만 하는 사과를 확보하는 일이였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는 웬만한 형편이면 사과만큼은 한접(100개)씩 사 두고 오가며 먹었다. 밥 외에 군음식이 없고 집집이 아이들은 많을 때라 제때에 그 많은 사과대기에 어른들의 걱정이 만만찮았으리라 생각이 든다.



추석 무렵이 되면 아이들은 금년에도 태풍이 세게 불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태풍이 지나가면 대부분 과수원들은 입장료 100환에 낙과(落果)를 무제한 담아올 수 있도록 개방했기 때문이다. “훔쳐 먹은 사과가 맛있다”는 말은 내겐 금시초문이다. 땅에 떨어져 일부가 썩은 사과를 그 부분만 도려내고 먹으면 달콤한 꿀맛이다. 이 사과들로 단맛의 극치인 디저트와인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해인가 태풍 사라가 우리 동네 나무담장, 지붕들 그리고 추석까지 날려 버렸다. 누구네 아버지가 무너져가는 집속에서 기둥을 잡고 끝까지 버티다가 돌아가셨다는 소문도 돌았다. 이후 아이들은 왠지 모를 죄책감에 한동안 말들을 잃고 다시는 태풍이 세차게 불도록 기도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추석이 가까워 오면 발갛게 익어 아삭아삭하며 새콤한 신맛이 좋은 홍옥과 가장 늦게 수확하여 추운 겨울 덜덜 떨면서 먹을 수 있는 국광을 특히 좋아했다. 11월 초에나 수확하는 국광은 껍질이 두껍고 알이 작다. 국광은 어느 때부터인가 알이 더 굵고 향과 맛이 비교가 안 되는 부사품종에 밀려 우리나라에서는 먹기가 어렵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와 부르타뉴 지역에 걸쳐 있는 중세 수도원 몽 생 미셀을 보러 가는 길에 생 말로를 들렀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이 잘 보이는 식당 창가 탁자에 낯익은 물건이 눈에 띄었다. 영락없는 국광이다. 점심을 먹고 얼른 국광을 베어 물었다. 얼마만인가 정말 반가웠다.

부르타뉴와 노르망디지방은 겨울의 추운 기후 때문에 포도로 만든 와인이 생산되지 않고 사과 쥬스 시드러(Cider) 를 많이 마신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청량음료 사이다가 아니고 알코올이 1 내지 6도 정도까지 포함된 사과주이다. 밀가루 반죽에 여러 가지 고명을 넣어 구운 크레이프를 골라 먹으면서 시드러를 같이 마시면 행복해진다. 국광과 홍옥의 고향이 대구가 아니고 이곳 유럽인지를 이제사 알게 되었다.


70년대에 20대를 보낸 사람들이라면 기억하는 애플와인 파라다이스가 있다. 과일쥬스를 발효시켜 만든 술의 이름이 통칭 와인이다. 그러나 포도로 만든 와인이 대부분이기에 와인이라면 포도주를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노르망디지역 칼바도스에서 사과주를 증류하여 내리면 그 지명그대로인 브랜디 칼바도스가 된다. 초로 밀봉된 뚜껑을 애써서 따면 40%가 넘는 알코올에 실려 사과의 신맛과 향이 밀려온다. 소설 <개선문>의 두 주인공 라비크와 조앙 마두가 만날 때마다 마시는 술이다. 밀입국자인 외과의사 라비크는 환자가 마취된 상태에 몰래 수술실로 들어가 수술을 대신하며 파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살을 하려다 라비크에게 제지당한 조앙 마두, 음울한 분위기의 스토리에 그들은 만날 때마다 칼바도스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휴교령이 내린 교정 한적한 구석에서 나는 개선문을 탐독하며 술과 담배를 배웠다. 콜록거리며 어렵게 배운 담배는 끊은 지 꼭 만 10년이 넘었지만 오늘밤 나는 칼바도스를 마신다. 소박한 국광의 맛과 낙과를 함께 줍던 어린 친구들과 고향의 아련한 이웃들도 마신다. 이젠 내가 아버지가 되어 무너져가는 기둥을 잡고 버텨야 하는 일상의 피로도 함께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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