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확산 "닭·오리보다 사람 먼저 죽을 맛"

머니위크 배현정 기자 2008.05.2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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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조류 독감 공포...진실과 오해

"비둘기에게 총구를 겨눠야 하겠습니까? 정성을 다해 키워온 닭들을 땅에 묻어야하겠습니까? 어린 두딸들을 데리고 길바닥에 나앉아야..."

1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AI 재조명 세미나'에서 농가대표로 나온 김춘권 씨는 끝내 울먹거리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조류 인플루엔자(AI)보다 더 무서운 'AI 공포'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AI는 국내에서 사람의 질병으로 나타난 적이 없음에도 AI공포는 전국의 가금산업을 마비시키며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AI가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터져나오면서 닭이나 오리 등 관련 업계의 한숨은 날로 깊어지고 있다. 관련 업계는 "이대로 가면 문을 닫는 업체가 속출할 것"이라고 하소연한다.



◆ AI보다 더 무서운 'AI 공포'

5월11일 오후 7시께 춘천의 한 유명 닭갈비집. 석가탄신일을 하루 앞두고 황금연휴를 맞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지만 춘천의 명물이라는 닭갈비집은 유례없이 한산했다.

'AI가 확산되고 있으니 닭먹는 사람이 많이 줄었겠지' 하는 예상은 했지만 그럼에도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매일 저녁시간이면 100m 가까이 대기줄이 늘어설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던 곳. 하지만 한창 저녁시간인 오후 7~8시에도 빈 테이플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AI가 강하기는 강한 모양이에요. 서울에서 AI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나온 이후 손님이 1/4 이상 줄어들었어요." 점원의 푸념이다.

춘천시에서는 거리에 있는 전광판을 이용해 '닭, 오리는 5분 이상 끓이면 이상이 없다'고 줄기차게 홍보를 하고 있었지만 외지 관광객은 물론 닭갈비를 사랑(?)하는 춘천사람들도 닭갈비를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 사정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4월 중순 AI방역에 나섰던 군인이 AI 의심 증세가 나타났다는 보도가 나온데 이어 AI가 서울 송파구까지 상륙했다는 뉴스까지 나오면서 치킨 업계 등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4월 초 올 들어 처음 AI 발생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해도 "버틸 만 하다"고 말했던 닭고기업계는 4월 중순 이후 뚝뚝 떨어지는 매출에 공멸 위기감마저 느끼는 형국이다.

서울 인사동에서 BBQ치킨을 운영하는 박해열 씨는 "평상시 판매량에서 60~70%나 줄었다"고 말했다. 인근이 사무실 밀집 지역임에도 단체 주문은 거의 중단된 상태. 하루 100여건이 넘던 배달 주문은 30건 안팎으로 떨어졌다.

박씨의 부인 강선자 씨는 "AI가 옮을까봐 닭고기를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뉴스 등이 나올 때면 너무 속이 상하다"며 "치킨이 안전하다는 걸 믿고 주문하는 손님들까지도 '더 바싹 튀겨주세요'하고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가금업자 "닭보다 먼저 죽겠다"

가금산업발전협의회에 의하면 지난 4월 AI 발생 후 한달여 기간동안 가금산업계가 입은 피해액은 무려 5000억원에 달한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의 지난 연휴 주말 닭고기 판매량은 AI 발생 전인 3월 주말 매출에 비해 70~80% 이상 급감했다. 홈에버는 아예 생닭 판매를 중단했다. 홈에버는 5월7일 "전국 35개 매장에서 생닭 제품을 철수시켰고 AI 노출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달걀만 판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홍국 하림 대표는 "지난 2006년의 AI 발생 보도로 오리농장과 치킨집 주인이 자살했다"며 "필요 이상의 AI공포 조성으로 가금업자 먼저 죽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질타했다.

윤홍근 제너시스 BBQ 회장은 "닭고기를 먹어서 AI에 걸릴 가능성은 전혀 없다"며 "안심하고 닭고기 등을 먹을 수 있도록 20억원 규모의 보상보험에도 가입했다"고 강조했다.

◆ 조류인플루엔자 Q&A

Q: AI에 감염되면 어떤 증상을 보이나?

A: 사람이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38도 이상의 고열과 함께 기침, 인후통,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증상은 상기도 감염(上氣道感染,감기)나 독감(인플루엔자)과 비슷한데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기 전 7일 이내에 닭이나 오리와 같은 가금류와 접촉하지 않았다면 조류인플루엔자를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Q: 최근 AI 발생이 확인된 광진구 인근의 어린이대공원에 놀러간 적이 있다. AI 감염위험은 없을까?

A: AI는 호흡기로 감염될 수 있는 전염병이나 일반적인 대기 속에 AI바이러스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의 연구결과 AI의 주요 전파경로는 감염된 가금류와 사람의 친밀한 접촉이며 발생장소와 1km 이상 떨어진 어린이대공원에서의 감염 가능성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재까지 AI 발생지역에 거주하는 사람 중에서도 AI 전염 사례는 보고된 경우가 없다.

Q: 집 근처에 비둘기 등 조류가 많이 살고 있으며 접촉한 사실이 있다. 별 문제는 없을까?

A: 비둘기는 일반적으로 AI에 저항성이 강해 쉽게 감염되지 않는다. 비둘기로 인하여 사람에게 전파된 사례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없다. 그러나 비둘기의 분변에는 인수공통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는 여러 병원체가 서식할 수 있어 면역력이 낮은 사람들이 비둘기와 접촉하는 것은 건강상 좋지 않아 가능한 이를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Q: AI가 유행하는 중에 닭고기ㆍ오리고기를 먹어도 이상은 없나?

A: AI가 발생하면 농장뿐만 아니라 3㎞ 이내의 닭이나 오리ㆍ달걀은 전부 폐기 조치되고 3~10㎞ 사이의 조류 및 그 생산물에 대하여도 이동통제를 실시하기 때문에 일반 국민이 오염원과 접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 닭(오리) 도축장에서는 도축 검사를 실시하여 건강한 개체만 도축되어 유통되며 바이러스 자체가 열에 약해 75℃ 이상에서 5분만 가열하여도 사멸하므로 충분히 가열 조리를 한 경우는 감염 가능성이 전혀 없다.

◆ AI테마주 투자는...

최근 조류 인플루엔자 공포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관련 테마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3년 등 과거 조류 인플루엔자 발병 때에 비춰보면 당시 관련 기업의 수혜가 미미했다는 점에서 분위기에 휩쓸린 투자는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근래의 AI는 과거의 일시적인 유행과는 달리 우리나라에 고착돼 매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면서 관련 종목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가장 주목 받는 AI 테마주는 녹십자 (118,000원 ▲2,200 +1.90%)유한양행 (77,000원 ▼6,800 -8.11%)이다.
녹십자는 2일 7만9500원이던 종가가 13일에는 9만원까지 치솟았다. 녹십자의 이러한 강세 배경은 조류 인플루엔자 백신 프로젝트. 정부 지원을 받아 화순에서 진행하는 독감백신 원액공장 프로젝트에 거는 기대감이 커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유한양행은 다국적제약회사인 로슈가 특허권을 보유한 AI치료제인 '타미플루'의 한국 원료 생산업체로 선정됐기 때문에 AI관련 기대감이 가장 높은 테마주다.

조윤경 하나대투증권 기업분석팀 부부장은 "AI는 테마성이긴 하지만 올 한해만 관심을 끌 재료는 아니고 매년 지속적으로 발생될 가능성이 높다"며 "또 당장 시장의 관심만큼 주가가 수직상승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장기 성장 가능성은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조 부부장은 "특히 유한양행과 녹십자는 기본 펀더멘털(기본적인 내재 가치를 나타내는 기초 경제 여건)이 우량한 데다 AI테마를 보너스로 가진 양상"이라며 "AI가 꺾인다해도 급격한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분석했다.

반면 벤처기업 가운데는 씨티씨바이오, 코미팜, 에스디, 제일바이오 등이 AI테마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씨티씨바이오 (7,770원 ▼100 -1.27%)는 AI를 억제하는 유산균에 대한 특허를 보유하고 있고 에스디 (0원 %)는 AI관련 진단키드 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증시 전문가들은 AI테마만으로는 큰 수혜를 기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업체의 내실이 탄탄하지 않으면 테마에 따른 심리적인 강세는 일시적으로 그칠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이다.

이혜원 한국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AI테마 관련 개발에 대한 기대감만으로는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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