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옵션 손실, 누구 책임인가

더벨 이승우 기자 2008.05.1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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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투기목적'+ 은행 '과도한 마케팅' + 정부 '원화약세정책' 합작품

이 기사는 05월14일(09:10)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기업들이 환율 변동 위험 회피(헤지:Hedge) 목적으로 가입했던 통화옵션 상품에서 큰 손실을 입게 되자 기업과 은행간에 책임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S기꾼(사기꾼)'이라는 원색적인 용어를 써 가면서 은행권을 비난하자 손실을 본 기업들이 강 장관의 발언을 등에 업고 은행들에게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는 등 그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은행들이 강권하다시피 해 통화옵션에 가입했고 그 결과 큰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 기업들의 주장. 반면 은행은 상품에 내재된 위험을 충분히 고지했고, 쌍방의 합의에 의한 계약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논란의 불씨를 제공한 재정부는 별도의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금감원도 책임 문제와 관련해서는 뒷짐만 지고 있다.

다양한 기업 사례

옵션 상품에 가입했던 기업들은 최근 환율 급등이 소름끼치는 일이다. 작년에 가입했던 옵션 상품 대부분이 넉인(Knock-In)되면서 계약금액의 2배 이상의 외화를 지금 시장환율보다 한참이나 낮은 환율에 팔아야하기 때문이다. 옵션 계약 이행을 위해 외화를 파는 족족 손실이 난다고 보면 된다. 불만이 나올 만도 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손실이 커진 옵션상품에 왜 기업들은 가입했을까. 'KIKO구조'라는 아주 복잡한 형태로 짜여 있는데도 말이다. 사례를 들여다 보면 다양하다.

첫째, 순수한 헤지 목적이다. 환율이 급등해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기는 하지만 가입 당시의 시장 환율보다는 높은 환율에 외화를 팔고 있어 이익과 손실 문제를 떠나 실질적인 헤지가 됐다고 볼 수 있다. 물론 2배 이상의 외화를 팔아야 해 헤지 비율이 높아진 만큼 손실은 더 늘어났다.

둘째, 투기 목적이다. 최근 몇 년동안 환율이 하락하면서 환율이 크게 오르지 않으면 상당한 이익을 볼 수 있는 옵션 상품에 베팅을 한 것이다.

이 경우는 기업 옵션 담당자들의 이해도가 상당히 높아 이를 이용해 이익을 보겠다는 의도가 강했다. 물론 실제 들어올 외화가 없는 경우가 많아 최근의 환율 급등은 그야말로 재앙에 가깝게 됐다. 이같이 투기에 나섰던 기업들이 옵션 손실 책임 문제에 대해 더 강한 목소리로 은행권을 비난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셋째, 덩달아 가입해 상투를 잡은 경우다. 과거 몇년 동안 환율이 크게 내리면서 옵션 상품으로 여기저기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에 은행의 마케팅에 넘어간 경우다.

이 경우 담당자들의 옵션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결정을 최고 경영자선에서 한 경우가 많았다. 규모가 아주 작은 기업들이 대다수였다. 물론 이 역시도 투기로 볼 수 있다.

어쨋든 기업들에겐 실제 들어올 외화가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하다. 없다면 이는 분명한 투기로 그 결과가 끔찍할 것이다.

은행, 책임 질 부분 있다

사실 은행들은 할 말이 많다. 옵션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은 기업들도 많고 또 실제 헤지가 됐는데도 결과적으로 손실이 나고 있다고 '생떼'를 쓰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항변이다.

그럴만도 하다. 옵션 계약을 체결하기 이전 위험 고지를 사전에 했고 이에 대한 동의를 받은 이후 계약서에 서명을 하기 때문이다. 옵션 이해도가 아주 높고 이같은 위험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손실에 대해 '물어내라'고 책임을 전가하는건, 말 그대로 '떼 쓰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들이 책임을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옵션 상품을 공격적으로 팔았던 시기와 옵션 상품 판매 기업에 대한 리스크를 간과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환율이 반짝 800원대에 진입하면서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환율 하락에 대한 공포가 조성된 틈을 타 은행들은 옵션 상품 팔기에 열을 올렸다.

작년 10월, 11월 당시 외환시장 전문가들과 각 은행의 딜러들도 환율이 바닥에 왔다며 추가 하락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었던 때였다.

그러나 고객인 기업들에게는 지난 몇년간 유효했던 환율 하락에 맞춰진 통화옵션을 더 적극적으로 팔았던 것이다. 이같은 우려를 짐작한 외국계를 비롯 일부 은행들은 4분기에는 통화옵션 판매를 크게 줄이기도 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작년 1분기에 통화옵션은 63조896억원어치 거래가 이뤄졌고 2분기에 53조7510억원, 3분기에 77조6870억원이 거래됐다. 4분기에는 93조8466억원으로 급증했다. 은행간 거래가 포함된 규모로 대고객 거래가 늘어난 만큼 같은 비율로 늘어났다고 보면 된다.

은행들이 책임을 벗어나기 힘든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기업들에 대한 리스크 관리가 소홀했다는 점이다.

통화옵션 가입 기업들의 실제 외화 유출입 흐름에 대해 간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정상적인 옵션 상품 판매는 개별 기업의 외화 흐름을 감안한 것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설령 기업 담당자가 먼저 나서 옵션 가입을 원했더라도 그 기업에 대한 외화 흐름에 대한 점검을 소홀히 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레버리지를 높여 투기를 하려고 했던 기업들의 리스크를 방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작년말과 올해초 통화옵션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하소연하자 향후 들어올 외화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레버리지를 높이는 형식으로 재구조화를 유도한 은행들도 많았다.

재구조화 이후에도 환율은 더 올라 손실 규모가 몇 배로 더 커지게 되면서 비난이 더 거세지기도 했다.

정부, 환율 올려놓고 나몰라라

재정부는 '사기꾼'이라며 으름장을 놓더니 여기저기서 "결국 정부가 고환율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손실"이라는 비난이 나오자 결국 입을 닫았다. 수출 진작을 위해 고환율 정책을 추구하면서 이로 인해 오히려 수출 중소기업들이 다치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올해 들어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는 '어~ 하다가 1000원'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손도 대볼 수 없을 정도로 가팔랐다. 900원대 초반에서 1000원 가까이로 오를 동안 정부는 손을 놓고 변동성을 키웠다는 비난도 받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올랐다는 것이다.

고환율 정책으로 인한 손실이라는 비난이 거세지자 재정부는 이제 할 말이 없어졌다. 결국 금감원으로 공은 넘어왔다. 몇몇 중소기업들이 민원 제기를 하면서부터다.
하지만 금감원은 통화옵션 판매 자제 공문을 은행에 보내기는 했지만 손실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냉정한 입장이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와 철저히 파악은 해보겠지만 기본적으로 금융회사와 기업간의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파생상품 판매에 있어서는 거래목적과 유동성 위험 등 위험에 대한 고지를 철저히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객관적인 입장에서 조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들어올 외화 없이 이보다 더 많이 헤지를 한 오버헤지의 경우 은행들이 부추긴 것이라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기업들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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