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IB' 무한경쟁 공포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2008.05.13 10:50
글자크기

[자본시장을 숨쉬게 하자]<1부>③거꾸로 간 자통법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따른 무한 경쟁은 무한 하향평준화로 귀착될 우려가 있다. 투자은행(IB)으로 도약하려는 대형사들은 IB부문에서 외국계 회사에 치이고, 주식중개(브로커리지)에서 후발 회사의 거센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증권사 IB담당 임원)

"증권사를 신규 설립하는 대기업, 은행들은 기본적인 수익원이 있고 중소형사들간의 인수·합병(M&A)는 시너지는 낮다. 활발한 M&A를 기대하기 어렵다"(금융연구원 이지언 연구위원)



자통법은 무한 경쟁을 통한 IB의 체질강화를 핵심목표로 삼고 있다. 초기 무한경쟁을 거치면 승자의 입지가 강화돼 한국판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 출현도 예견할 수 있다는 게 정부 논리다. 하지만 증권업계 내부에서는 이에 대해 '공포'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증권사 수는 5월을 지나면 60개를 훌쩍 넘어선다. 현재 54개(금융감독원 집계 작년실적 제출 회사) 외에 신규 설립허가를 신청해 예비허가를 받은 곳은 8개사에 이른다. 또 은행들이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며 증권사 설립을 계획 중인 곳이 있고, 대기업도 자산운용업 진출 후 증권업에 뛰어들 태세여서 70개 돌파도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다.



현재 종합증권사 설립을 신청해 예비허가를 받은 곳은 △IBK투자증권(신청인 기업은행) △KTB투자증권(KTB네트워크) △SC제일투자증권(SC제일은행) 등 3곳이다.

또 위탁·자기매매업의 경우 △토러스증권(손복조 전 대우증권 사장) △LIG투자증권(LIG손해보험) 등 2곳이 예비허가를 받았다. 위탁매매업 단종면허의 경우 ING증권중개(ING은행)와 바로증권중개(박준형), 와우증권중개(코린교역) 등 3곳이 예비허가를 받았다.

50개사가 복닥이며 나눠먹었던 파이가 60개사 이상으로 참여자가 늘면서 개별 파이가 줄어들 것이란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 상황에서 자통법 개정을 주도한 금융 당국과 업계의 인식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당국은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와진 만큼 경쟁이 극대화되고 자연스레 쏠림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학계와 업계의 의견은 다르다.

이지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형사들은 업무.고객층.지점망 등이 유사하기 때문에 시너지가 낮아 M&A를 시도할 유인이 낮고 대형사들은 강력한 지배주주가 존재하기 때문에 역시 M&A가 쉽게 일어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현상 유지에 안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신설 회사나 신규 진입회사들도 자체적인 수익 기반을 갖추고 있어 쉽사리 퇴출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현대차IB증권은 현대차그룹의 회사채 등 고정 물량이 있고 KB투자증권(한누리투자증권서 사명변경)도 국민은행의 후광 효과가 탄탄하다. 설립이 최종확정되지는 않았지만 IBK증권, SC제일증권, LIG투자증권 등도 대주주 금융사와의 연계 작업을 통하면 시장 안착이 예상된다.

투자은행 업무를 계획하는 대형사들은 원치않는 역차별이 생길 공산이 크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증권사 IB담당 임원은 "외국과 국내에서 동시에 영업을 하는 글로벌 IB와 국내 IB간에 초기 단계에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진입 규정에서의 대폭적인 규제 완화는 업계내의 전반적인 경쟁 격화로 이어지며 대형 IB를 추진하는 회사들이 글로벌 IB들과 참석할 수 있는 여력이 분산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초기 단계에서는 국내회사를 보호.육성해 외국계 대형사와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준행 서울여대 교수도 "경쟁을 유발해서 IB를 지향하는 회사들이 스스로 역량을 키워야 하지만 국내 IB들이 초기에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공기업 민영화 등이 예정돼 있는데 초기에 국내 IB들이 인수 컨소시엄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이지언 연구위원은 "시장원리에 따른 경쟁을 촉진하는 동시에 퇴출제도를 강화하고 M&A를 통한 대형화.투자은행 유인을 부여하는 등 시장지향적 금융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