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상인종' 중국인

강효백 경희대 중국법학과 교수 2008.05.08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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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상인종' 중국인


한중수교 16년째이다. 강산이 한 번하고도 절반 이상이 변한 세월인데 우리의 중국에 대한 관점은 의구하다.

2005년에 벌써 중국+홍콩의 수출액은 세계 1위를 차지하였고, 한국의 대중수출액(1위)+대홍콩수출액(4위)도 대미수출액(2위)+대일수출액(3위)를 합한 것보다 훨씬 많아졌다.

그런데도 한중수교 이전이나 지금이나 “중국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고 외치고만 있다. “정치는 좌, 경제는 우", "중국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조화는 상식에 벗어난다고 본다.” 이런 따위의 중국에서도 이미 30년 전에 한물간 이념 타령이나 하고 있다.
 
그게 아니면 “얼핏 보면 잘 나가고 있는 중국경제는 서구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덕분인데 중국인의 정치 참여욕구가 강렬해져 곧 제2의 천안문 사태가 올 것이다” 류의 서구우월주의 시각에서 출발한 천하대란, 국가분열 등 각양각색의 시나리오를 앵무새처럼 읊조리고 있다.



멀리는 구소련 붕궤 시부터 덩샤오핑 사망 때까지, 가까이는 사스 창궐 때부터 최근의 티베트유혈사태까지, 중국에 불리한 듯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미국의 저명한 누구도 그러더라”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중국은 서구의 기대와 달리 무한질주하고 있는 걸까? 흔히 중국발전의 비결을 사회주의를 버리고 서구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때문이라 하는데, 과연 그럴까? 중국도 서구사회의 발전 모델로 경제발전단계를 밟을 것이라는 가설이 중국 사회에서도 통하는 정론일까?

사실,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지폐와 상업광고(CF)는 원래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발명하고 상용되어 온 것이다. 960년 송나라 초기 스촨성의 한 거상은 교자(交子)라는 지폐를 발행하였다. 그리고 널리 오래 상용되었던 세계 최초의 지폐는 1287년, 원나라 세조때 발행된 ‘지원통행보초’였다.



13세기 여행가 뤼브릭은 “중국의 상인은 장사를 하는데 금은화를 쓰지 않는다. 그들은 황제의 도장이 찍힌 손바닥 크기의 종이로 물건을 사고 판다”라고 증언 하였다. 마르코폴로도 `동방견문록'에서 지폐사용이 중국 전역에서 보편화되어 있다고 기록하였다. 이것은 1661년 스웨덴 정부가 서양 최초로 지폐를 발행한 것에 비한다면 약 400년 앞선 것이다.
 
또한 베이징의 중국역사박물관에는 11세기 산둥성 지난(濟南)의 유가침포(劉家針鋪) 광고에 사용한 둘레 5인치의 동판이 진열되어 있다. 그 동판에는 흰 토끼가 약을 빻는 모습이 침방의 상표로 그려져 있고 그림 아래쪽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고급 강철을 사서 정성을 다해 만든 세침(細針)입니다. 유사품에 조심하고 행상이 팔 때는 덤으로 주지 않습니다. 흰 토끼를 기억하세요.” 이것은 1473년 독일에서 서양 최초로 출현한 서적판매광고에 비하여 300여년이나 앞선 상업광고이다.
 
중국말로 성이(生意)는 인생의 의의, 즉 왜 사냐, 무엇 때문에 사느냐 따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의미가 아니다. 장사나 영업을 뜻한다. 중국인에게 삶의 뜻은 한마디로, 장사를 잘해서 잘 먹고 잘 사는 현실적 이익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지금의 중국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중국 땅은 온통 시장이며 중국인은 모두 상인이다.

우리의 중국진출 실패원인 가운데 하나는 중국인이 이러한 생래적 자본주의자, 비단 장사 왕서방, ‘상인종(商人種)’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그 대응책마련에 소홀하였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강호제현께 삼가드리는 한 말씀, 이제부터는 제발 중국을 잘 모르겠으면‘사회주의’이니까 그러지 말고 ‘중국’이니까 하자. 상인종 중국인 앞에서 들이대는 사회주의 따위의 ‘이즘(ism)’의 돋보기는 걷어치우자, 어떻게 하면 그들과 ‘흥정(nego)’을 잘할 것인가를 더 많이 더 깊게 고민하자. 중국인에게 이즘은 짧으나 흥정은 영원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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