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 쇠고기 협상 누가 책임지나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8.05.0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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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속 협상' 책임론 거세
-30개월 이상 왜 양보했는지가 쟁점
-보이지 않는 힘 작용설 여전

정부가 "광우병 발생시 수입을 중단하겠다"며 한·미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협상 실패를 사실상 시인하면서 '졸속 협상'에 대한 책임론도 거세지고 있다.

이번 협상은 지난달 11일부터 서울에서 재개돼 한·미 정상회담 하루 전인 18일 새벽에 타결됐다. 협상이 재개된다는 보도자료는 협상 시작 하루전인 10일 배포됐다. 정부는 "미국이 총선(4.9) 등 한국 내 정치일정을 고려해 그때부터 협상을 시작하자고 제의했다"고 갑작스런 협상 재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우리측 협상 대표는 민동석 농림수산식품부 농림통상정책관(차관보)이 맡아 협상을 주도했다.

민 정책관은 외무고시(13회)를 패스한 외교통상부 출신으로 2006년5월부터 농식품부에서 농업 관련 국제 협상을 맡아왔다. 민 정책관은 협상에 앞서 "국제적 기준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국제적 기준은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을 언급하는 것으로, OIE는 지난해 5월 미국을 '광우병 위험 통제국'으로 지정했다. 위험 통제국은 광우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국가가 아니라, 광우병이 발생해도 위험을 통제할 만한 국가를 말한다. 돌이켜보면 미국측 요구조건을 상당폭 수용할 것임을 시사했던 대목이다.

협상 과정에서 드러난 쟁점은 '30개월 이상 소'까지 수입할 것인지였다. 광우병 위험성이 적은 30개월 미만 소는 뼈까지 수입한다는데는 이견이 없었다.

당초 우리측은 "30개월 미만 소를 수입한뒤 미국에서 강화된 동물성사료 금지 조치를 취하면 30개월 이상 소도 수입하겠다"는 단계적 해법을 고수했다. 그러나 미국측이 OIE 기준을 내세워 30개월 이상 소까지 완전 개방해야 한다고 완강히 버티면서 협상은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러다 협상이 다시 결렬되지 않냐는 얘기가 떠돌기도 했지만 한·미 정상회담이 가까워지면서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소식이 농식품부 내에서 흘러다녔다.

이후 발표된 협상 결과는 처음 예상보다 미국측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30개월 여부와 무관하게 전면 개방'이었다.



특히 광우병 우려가 큰 30개월 이상 소까지 개방하면서 그 시기를 미국이 강화된 동물사료 금지조치를 시행하는 시기가 아닌 관보에 '게재'하는 시기로 해 비판을 자초했다. 이 때부터 '조공 협상', '퍼주기 협상', '굴욕 협상' 등의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민 정책관은 "나의 머리에는 정상회담도,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들어 있지 않다"며 정치적 결정이 아님을 강조했다.

주무 장관인 정운천 농식품부 장관은 "협상 전권을 민 정책관에게 위임했지만 최종 결정은 청와대가 아닌 내가 직접 했다"고 독자 결정임을 수차례 밝혔다.



민 정책관은 "강화된 동물사료금지 조치 약속은 OIE 기준에 따라 미국에서 안해도 되지만 우리가 협상을 통해서 덤으로 얻어낸 성과"라고 주장했지만 민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를 두고, 정부 내에서도 "민간 CEO 출신인 정 장관이나 외교통인 민 정책관이 쇠고기의 특수성과 폭발력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냐"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4월초 협상 준비 때만해도 '단계적 개방'이 농식품부의 협상 원칙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보이지 않는 힘'이 협상 지침 변경에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이번 협상이 정상회담과는 무관하다는 점도 여전히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정부측 고위관계자는 "통상적으로 민감한 내용의 협상은 주무부처에 완전한 재량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면서 "이번 협상 내용을 농식품부 단독으로 결정했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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