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판 '되고송'..美 광우병 없으리라 확신?

머니투데이 여한구 기자 2008.05.0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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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약속 사실상 파기
-가정을 전제로 한 발표
-광우병 발생했을때 통상분쟁 확실시

정부가 7일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중단 조치를 취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밝혔다. 여론의 십자포화에 시달린 정부가 기존 입장을 스스로 뒤집은 것이다. 그러나 책임 있는 정부가 국제적 약속을 사실상 파기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국내 여론이 너무 악화돼 통상마찰 우려를 감수하고서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밝힌 것처럼 이날 발표는 미국과의 사전협의 없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 장관의 발표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과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같은 맥락의 발언을 한 점으로 미뤄 당·정·청 3자간 합의는 이뤄진 것으로 읽힌다.

정부는 일단 지난달 18일 양국간에 합의한 수입위생조건을 변경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정 장관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대로 가면 되고, 광우병이 발생한다면 새로 협의를 하면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강수'를 둔 데는 미국에서 추가적으로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고한 '믿음'이 깔려 있다. 지난 1997년 이후 미국에서 단 한건의 광우병 발생이 없었다는 점도 정부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요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는 '가정'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미국측이 순순히 이를 수용할지 미지수다.

새 수입위생조건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해도 한국 정부는 독자적으로 수입중단 조치를 취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미국의 광우병위험통제국 지위를 박탈할 때만 개정을 요구할 수 있다. 이때도 협상문을 자체를 바꾸는 '재협상'은 불가능하다. 또 우리 정부가 개정을 요구해도 미국측이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이런 점 때문에 미국은 쇠고기 협상에 관한 재협상은 물론 개정요구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미 무역대표부(USTR)의 수전 슈워브 대표는 "한·미 간에 합의된 쇠고기 협상에 대한 재협상이나 합의 내용을 변경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날 정부 발표는 한·미간 통상 마찰을 불러 올 수 있는 '휘발성'을 안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에서 이를 '합의 파기'라고 규정하면서 공식적으로 문제를 삼을 가능성도 높다. 특히 정부의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을 경우는 양국간 통상분쟁이 빚어질 것이 확실시된다.

예컨대, 우리 정부가 국제협상을 무시하고 쇠고기 수입중단을 취한 것에 맞서 미국도 우리 수출품에 무역보복을 가할 수도 있다.

물론 정부가 여론에 굴복해 국제적 신의를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통합민주당 정세균 의원은 "미국에 재협상을 먼저 제안하는게 옳은 방법이지, 협의 없이 협상 결과를 뒤집는 것은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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