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외국계는 OK, 증권사는 '글쎄'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2008.05.06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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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을 숨쉬게 하자]<제1부>②숨통 조이는 역차별

 "국내 증권사는 이중의 역차별을 받고 있다. 국내 은행에 치이고, 외국계 투자은행(IB)에 눌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증권사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각종 제도와 규정에 담고 있고, 이는 국내 증권사를 옥죄고 있다"(A 증권사 고위 임원)

 정부는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 시행을 통해 국내 대형·글로벌 IB를 육성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내 증권사들은 역차별을 해소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크게 미흡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자통법이 시행되면 무한경쟁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증권사에 대한 '홀대'가 해소되지 않으면 애초 경쟁은 무리"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은행·외국계는 OK, 증권사는 '글쎄'


◇왜 차별하나〓B 증권사 IB 담당 임원은 "정부는 줄곧 은행을 중심으로 금융시장 정책을 펼쳐 왔고, 지금도 그렇다"며 "은행을 국내 자본시장 유지의 핵심 지렛대로 삼아 시장을 지킨다는 낡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통법은 금융업 영위의 벽을 허물고 경쟁을 유도한다는 취지에서 도입·시행될 예정이지만 금융당국이 '은행 편애'를 버리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통화정책을 쥐고 있는 한국은행은 환매조건부채권(RP) 등 자금조달을 은행 중심으로 허용하고 있어 증권사에 커다란 역차별로 작용하고 있다고 이 임원은 꼬집었다.

 영업용순자본비율(NCR)도 역차별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증권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비록 정부에서 파생상품과 관련한 NCR 규정을 300%에서 200%로 낮추기로 했지만 이는 여전히 증권사의 발목을 잡는 차별규제라는 것.



 외국환 업무의 경우도 증권사에 대한 규제가 훨씬 강하다. 금융당국에서 올해 이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이 비협조적이어서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지 미지수라고 증권업계는 우려하고 있다.'은행은 OK, 증권사는 글쎄'라는 인식이 한국은행을 비롯해 국내 금융당국자들의 뇌리에 아로새겨져 있다는 비판이다.

◇고쳐지지 않는 역차별〓지난해 메릴린치와 골드만삭스는 국내 시장에서 장외 파생상품 면허를 따면서 은행 지점 명의로 신청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은행 명의로 하면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증권업에서 장외파생상품 면허를 얻으려면 자본금 1500억원 가량이 들어야 하는데, 은행 지점은 이보다 적게 돼 있다. 국내에서 파생상품 영업은 은행 면허로 할 때 가장 수월하게 돼 있다고 증권업계는 줄곧 반발해 왔지만 지금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고객예탁금' 제도는 역차별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C 증권사 IB 담당 임원은 "한국은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중앙집중식 예치구조, 이른바 '별도예치금'을 도입·시행하고 있다"며 "이 규정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된 채 증권사들의 발전을 정면으로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제도는 증권회사 고객이 금융투자상품을 매매하기 위해 위탁한 고객예탁금을 전액 증권금융에 의무 예치토록 하고 있다. 투자자가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위탁계좌에 현금을 넣으면 이 현금이 증권사가 아니라 증권금융에서 보관하고 있다.

 이는 증권사가 수신기능을 갖고 있지 않고, 증권사의 재무건전성 등에 의문을 품고 있는 금융당국이 투자자 보호라는 취지로 도입했다. 의무예치 비율을 외환위기 이전에 30∼40% 수준에서 국제통화기금(IMF) 권고에 따라 100%로 높였다. 하지만 증권사의 자기자본 규모, 재무건전성, 수익성 등이 지난 10여년동안 몇 배 이상 좋아졌음에도 이 규정은 그대로다.



 이 규정은 유독 증권사에만 적용되고 있다. 증권사는 펀드판매시 펀드 매수금액 이외 현금 형태의 예수금을 증권금융에 의무예치해야 하지만 은행은 자기 은행에 신탁 형태로 모아둘 수 있다.

 증권업계는 단계적으로 의무예치 비율 인하, 별도예치금 제도 폐지를 통해 역차별을 해소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비율을 낮춰주면 투자자예탁금을 은행 등 다른 금융회사에 예치할 수 교섭력이 높아지고, 직접운용까지 허영되면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과 같은 고객친화적 상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증권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게다가 투자자예탁금 운용능력에서 나타나는 성과가 차별화되며 경쟁력 있는 증권사를 가려내는 기준을 새로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D 증권사 고위 임원은 "이같은 역차별 조항이 자금조달 및 운용 등에 널리 퍼져 있고, 자통법 시행과 더불어 이를 해소하려는 금융당국의 의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다. 불공정 경쟁 속에서 국내 IB들은 숨막혀 질식하게 될 것이다"고 한숨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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