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서울에선 못 살 것 같아요"

머니투데이 박창욱 기자 2008.05.0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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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속에서]급한 일상 속에서도 여유를

최근 부원들과 함께 MT를 갔다. 목적지는 경기도 청평에 있는 한 펜션이었다. 잠깐이나마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그 자체가 좋았다. 북한강변의 경치는 정말 멋졌다.

즐겁고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 난 다음날 토요일 아침. 모두들 근처 호수가로 산책을 나갔다. 부원들은 의기투합, 보트를 타고 근처 경치를 감상하기로 했다.



그러나 보트의 정원이 부원 모두가 타기엔 딱 한 자리가 모자랐다. 철없는 수습기자들이 마냥 좋아하는데, 그들의 바로 위 기수 후배가 자신이 빠지겠다고 나섰다. 착한 친구였다. 하지만 '속마음까지 그럴까' 싶어 "춥다"는 핑계로 내가 안타겠다고 했다.

모두들 보트를 타러 나간 사이, 선착장 사장님은 내게 커피 한잔을 주셨다. 차 한 잔에 자연스레 수다가 따랐다.
"겨울도 지나고 봄이니, 손님이 많이 늘었죠?"
"예, 주말엔 꽤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요. 이제 비수기를 벗어나는 것 같아요."



"공기 좋고 멋진 이 곳이 일터이니 정말 좋으시겠어요."
"에이, 문화시설도 없고 불편해요. 뭐 하나 사려고 해도, 차를 타고 한참을 나가야 하고."

"그래도 멋지고 한가하고 좋잖아요. 공기도 경치도. 행복하실 것 같아요."
"하하, 사실은 그래요. 여긴 시간이 느리게 가서 좋아요. 저도 원래는 서울에서 살다가 여기로 내려왔어요. 처음엔 아까 얘기한 것처럼 답답하기도 했었지만, 이젠 아예 서울에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설명이 이어졌다. "얼마 전에도 서울에 다녀올 일이 있었는데, 다들 어찌나 차를 험악하게 몰아대던지 정말 혼이 났어요. 뭐가 그리 바쁘고 급한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일을 보는 대로 서울을 얼른 벗어나고 싶더라고요. 사실 여기 놀러 오시는 손님들을 봐도 그래요.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다들 정말 급하세요. 여유를 찾으려고 온 이 곳에서조차 말입니다."


사장님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지금 세상은 휙휙 돌아간다. 세상이 바쁘니 나도 바빠야 한다. 혼자만 느긋하게 살다간 딱 밥 굶기 좋은 세상이다. 일상을 여유롭게 보내다가는 결코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가 없게 된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막상 한가로운 시간이 주어져도 그 여유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뭘 위해 바쁘게 사는 건지도 깡그리 잊어버린 채.



문득 예전에 읽었던 이야기 하나가 생각났다.

한 부자가 경치 좋은 외딴 바닷가에 요트를 몰고 놀러갔다. 바닷가엔 초라한 행색의 어부 한 사람이 낚싯대를 들이 우고 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부자가 보기에 어부는 너무나 '건성건성' 이었다. 오지랖 넓은 부자는 어부에게 참견을 걸었다.

"이보시오."
"왜 그리시오."



"아니, 지금 뭐 하자는 거요? 고기를 잡으려면 열심히 잡아야지. 그렇게 '놀멘 놀멘' 하고 있어서야 쓰겠소."
"왜 내가 열심히 고기를 잡아야 합니까?"

"이런 답답한 사람을 봤나, 열심히 고기를 잡아야 부자가 될 것 아니오."
"부자가 되면 뭘 어찌 하려고요?"

"아, 돈을 벌어야 경치 좋은 곳에 놀러가서, 낚시라도 즐기며 여유 있게 살 것 아니오."
그러자 어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참내, 바로 지금 내가 그러고 있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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