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반응 냉랭, '노인 이미지'희석이 관건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2008.05.13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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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스토리]실버타운 사업

은(銀)은 금과 더불어 높은 가치를 지닌 금속이다. 정제법이 까다롭고 자연 산출량이 적어 고대에는 금보다 귀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은을 가지고 그릇으로 사용하면서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기도 했으며 우리 조상들은 은수저를 집안의 필수품으로 인식했다.

은은 고귀한 가치 외에도 독(毒)과 만나면 색이 변한다는 믿음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식기로 널리 쓰였을 정도로 신뢰감이 가는 금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은(silver)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가치를 떨어뜨리는 곳이 있다. 이 독특한 현상이 나타나는 곳은 ‘실버타운’이라는 주택시장이다.

2002년부터 불어 닥친 실버바람은 일본에서 크게 성업했다는 실버산업과 함께 큰 관심을 끌었다. 여기서 실버는 노인의 흰머리를 미화시킨 용어이며 실버산업은 노인 관련 산업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실버타운의 고전, 언제까지...

노인인구의 증가로 인해 실버타운에 대한 수요가 높을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지’ 문제로 잠정 휴업한 상태다. 시공순위 상위권 업체 대부분이 실버산업의 미래 가치를 보고 뛰어들었다가 모두 미분양이라는 된서리를 맞고 꼬리를 내린 것이다.

최근 평창동에 실버타운을 분양했다가 사업을 접은 한 중견 건설업체 관계자는 “실버 열풍에 힘입어 실버타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 많은 건설사들이 뛰어들었지만 모두 백전백패했다”면서 “분양률이 극히 미진해 다른 사업으로 돌리는 방안을 모색 중이나 인허가 문제로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시장반응 냉랭, '노인 이미지'희석이 관건


국내에서 실버타운을 표방한 독자적인 브랜드는 SK건설의 그레이스힐, 삼성생명의 노블카운티, 신성건설의 아너스밸리 등이 있다. 이들 세 개 브랜드는 대부분 분양 초기 실패의 경험을 맛봤으며 이후 분양한 중소 업체들도 대부분 실패했다.


실버타운에서 실패를 경험한 건설업체는 수요자의 인식이 ‘편안한 노후’보다는 ‘양로원이나 요양원’을 떠올리는 ‘실버’라는 이미지 때문에 분양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높은 분양가도 걸림돌이었다.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어야 하고 도심 외곽으로 나갔을 경우 요양시설 이미지가 강해 도심 내 입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한 건설업체 직원은 “교통 여건이 편리한 곳을 찾다보니 분양가격이 3.3㎡당 1300만원에 이르렀다”면서 “차라리 아파트 일반분양을 받고 가사도우미와 건강도우미를 쓰는 편이 낫다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실패요인을 분석했다.

게다가 60세 이상의 노인에게만 분양하다 보니 분양시장도 작았을 뿐 아니라 자녀에게 양도하는 문제도 쉽지 않아 일반분양으로 수요가 움직인 것으로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설사 일부 분양이 진행됐다 하더라도 명맥을 유지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실버타운 내에는 전문병원이 입지하기 보다 병원에서 파견 형태로 근무하다 보니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력 수급에 문제가 있다.

경희의료원 관계자는 “시장이 아직 성숙되지 않은 결과”라고 말한 뒤 “구성원이 결성돼야 의료행위가 가능한 데 미분양이 속출하는 통에 실제로 의료지원이 어려워 사실상 실버타운 사업은 무산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실패를 기정사실화 했다.

이 병원은 여러 건설사로부터 실버타운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실질 협약까지 간 곳은 두곳에 불과했으며 이마저도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한편 실버타운업계의 고전은 협회의 쇠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실버타운의 주도협회 격인 대한실버산업협회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단체로 존립 여부마저 불투명하다. 대한실버산업협회의 회장인 김한옥 도시미학 대표는 국내 디벨로퍼 1세대로 실버타운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지만 냉냉한 시장의 반응으로 고전 중에 있다.

◆ 송도병원 시니어타워는 승승장구

실버타운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송도병원에서 운영하는 시니어스타워는 호성적을 기록 중이다. 대장암 전문병원으로 특화된 송도병원은 요양센터 등을 특화시켜 실버타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는 1998년 중구 신당동에 144세대의 서울시니어스타워라는 이름으로 실버타운을 개원한 이후 2003년 강서타워, 분당타워 분양에 성공했다. 올해에는 강서구 등촌동에 가양타워를 분양해 입주를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92%의 분양률을 보이고 있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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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사업의 주체이다 보니 의료시설에서 특화된 장점이 있다. 강서타워는 강서송도병원과 서울타워는 약수동 송도병원 본원과 함께하고 있으며 다른 두 곳도 타워 내 클리닉센터를 운영하고 있어 의료분야의 강점을 그대로 살렸다.

시니어스타워 관계자는 “건강, 식사, 여행, 산책 등 세밀한 관리체계와 실버타운의 10년 노하우를 살려 입주자들의 만족도를 극대화 하는데 힘쓰고 있다”면서 “여러 가지 불편사항들을 개선하다 보니 입주자들의 만족감이 높다”고 말했다.

이곳은 통상 실버타운이 갖는 50% 수준의 전용률을 70% 수준에 맞춤으로써 개인 생활공간을 대폭 향상시켰다. 반면 부대시설이나 취미활동공간은 자체 편성한 예산으로 회사에서 구입해 거주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또 수영장 이용 등 시설운영 및 관리비용을 운영선납금이라는 명목으로 분양가와 함께 받았지만 개인적 이용 편차를 고려해 올해 입주한 가양타워부터는 개별적으로 받기로 했다. 이로써 약 1억5000만원의 운영선납금은 상황에 맞게 납입하면 되기 때문에 입주자들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수요자의 입맛에 맞는 변화와 노하우 덕분에 이 실버타운에 입주를 희망하는 대기수요가 수백명에 이르는 등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다만 높은 입주비용은 큰 걸림돌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기본관리비, 건강관리비, 식비 등 매달 100만~150만원에 이르는 생활비때문에 일정하게 수입이 있는 연금보험 혜택자들이 많이 입주해 있다”면서 “분양가격만 보통 3억5000만원에 달하기 때문에 전문직종에 종사한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높은 분양가격이 책정된 이유는 토지 비용 때문이다. 접근도가 높은 도심 내 위치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분양가격도 덩달아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서민에게 도심 속 전원형 실버타운이 공급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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