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은행들, 눈가리고 아웅..정상화 멀었다

머니투데이 유일한 기자 2008.04.30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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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BO 채권 매각시 비상식 대출..CDO로 둔갑도

이번 신용위기는 정말 최악을 지나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었을까. 아니면 그렇게 보일 뿐 바닥은 아직 멀었을까.

최악이 지났다고 주장하는 전문가 및 투자자들은 금융시장의 안정을 중요한 근거로 꼽는다. 은행들이 대규모 상각과 더불어 대규모 자금 조달에 성공하고 있으며 나아가 장부에 담아둔 악성 자산(모기지증권 등)을 시장에 하나둘 성공적으로 매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디폴트스왑(CDS) 프리미엄도 최근 급락, 투자자들의 위험 선호가 살아나고 있다는 근거로 자주 등장했다. 국채 인기가 줄어 가격이 급락(채권수익률은 급등)하고 있으며 이에따라 회사채와의 스프레드(리스크 프리미엄)도 부쩍 줄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씨티그룹 메릴린치 등 금융주가 저점에서 30% 안팎 상승한 것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가운데 연준(FRB)은 오는 30일 기준 금리를 0.25%인하하면서 올해 더이상 인하는 없다고 선언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실상 신용경색과 경기침체에 대한 방어를 중단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은행들이 사실상 막대한 특혜를 주고 자신들의 장부에 있는 악성 채권을 투자자들에게 매각하고 있을 뿐 신용시장이 정상화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연준의 공격적 금리인하와 대규모 유동성 공급이 있었지만 금융기관의 대출이 증가하면서 경제시스템에 활력이 살아나는 모습은 찾기 힘들고, 대신 은행들의 현란한 눈속임만 가득하다는 것이다.

◇비정상적 조건으로 대출..악성 자산 줄이기 혈안
이와 관련 블룸버그통신은 29일(현지시간) 신용위기가 정말 끝에 가까이 왔다면 비크람 팬디트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가 시장 가격보다 훨씬 나쁜 조건으로 은행이 안고 있는 자산을 매각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신이 지목한 자산은 기업들의 차입매수(LBO) 과정에서 은행들이 떠 안게 된 대출 채권으로, 씨티는 4월중 80억달러를 매각했다.

씨티그룹은 260억달러 상당의 LBO 대출 채권을 갖고 있다. 사모펀드 등이 기업을 인수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댓가로 피인수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발행한 채권을 대규모 확보했지만 신용위기로 마땅한 투자자를 찾지 못해 장부에 쌓아둔 자산이었다. 매각이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이 자산은 대부분 투자등급 이하의 신용등급을 받고 있다. 지난해 은행들의 LBO 지원 규모는 7350억달러로 사상최대였다.

씨티그룹의 매각 행태를 보면 한마디로 정상이 아니다. 80억달러의 LBO 채권을 사모펀드들에게 매각했는데 바로 직전 60억달러를 이들 투자자에게 대출해주었다. 문제는 대출 조건이다. 이번 거래에 정통한 관계자들에 따르면 씨티가 투자자들에게 책정한 금리는 씨티가 자금을 조달하는 금리보다 낮았다. 도이치뱅크와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역시 자신들의 부실 자산을 매각하면서 이를 사는 투자자들에게 대규모 대출을 해줬다. 매우 좋은 조건으로.


베어링 자산운용의 니겔 실리스 채권 분석 책임자는 "이런 거래가 누적되며 전세계 은행들이 지고있는 LBO 대출 규모는 최대 2300억달러에서 910억달러로 줄었지만 은행들이 새로운 고객에게 대출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모펀드에게 대규모 대출을 해주고나면 일반 대출은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실리스는 "은행이 보유한 과도한 재고가 줄고 있고 모든게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낙관하기 어렵다"며 "어쩔 수 없이 재고를 줄여야하는 은행들은 정작 자신들이 대출을 해서 돈을 버는 데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악성 채권 무늬만 바뀌어 상존하기도
부실 자산 매각으로 언뜻 은행 장부는 깨끗해지고 있지만 대출 채권의 무늬만 바뀌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4개월동안 은행들이 사모펀드에 대출을 해주고 매각한 LBO 대출은 650억달러에 달한다. 블랙스톤 그룹의 GSO 캐피탈 파트너스와 아폴로 매니지먼트 등이 투자자였다.

이 과정에서 상당수 악성 채권은 부채담보부증권(CDO) 같은 구조화 상품으로 가공됐다. CDO는 거래가 쉽지 않은 위험 등급의 채권을 투자등급의 채권과 함께 묶어 파는 기법을 사용한다.

리먼 브라더스에서 운용본부장을 역임했던 로버트 윌렌스는 "부채를 새로운 상품으로 대체할 뿐 궁극적으로 은행의 장부가 깨끗해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블랙스톤이 달라스에 위치한 신용카드 회사인 얼라이언스 데이타 시스템의 인수를 포기하는 등 거래 실패로 은행들의 LBO 대출이 줄어든 규모도 적지않았다.

◇파격적 혜택은 매각의 필수 조건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은행들은 LBO 채권을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에 매각했다. 도이치뱅크는 1달러당 90센트에 매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자금을 전혀 지원하지 않은 골드만삭스는 크라이슬러나 베인캐피탈의 바바리아 요트바우 등의 자산을 1달러당 60센트 중반의 가격에 매각하기도 했다. 자금 지원이 없으면 원하는 가격에 팔 수 없는 상황이다.

씨티그룹의 LBO 대출은 최초 690억달러였지만 팬디트 취임 이후 자산 매각에 박차를 가했다. 2분기에만 대출을 통해 매각한 80억달러를 포함, 120억달러 어치를 팔았다. 그래서 지금 LBO 대출은 260억달러 수준으로 줄었다. 씨티처럼 어려운 입장에 처한 은행일수록 투자자 배려는 화끈했다. 씨티는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1달러어치 채권을 사모펀드에게 파는데 4달러를 대출해주기도 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매각으로 볼 수 없다.

대출 금리는 더 없이 쌌다. 블랙스톤 같은 LBO 전문 회사는 런던 은행간 금리(리보)에 1.5%의 가산금리만 더해 4.3%로 대출을 받기도 했다. 이는 씨티가 지난주 매각한 우선주에 부여한 금리 8.4%에 비해 매우 파격적이다.

도이치뱅크의 경우 블랙스톤과 아폴로에 대해 씨티그룹과 같은 대출을 해줬다.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리보에 1.25%의 낮은 가산 금리를 더한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도이치뱅크는 지난주 50억달러를 사모펀드들에게 매각했다.

어쨌든 여러 매각이 성사되면서 다른 LBO 채권 가격이 반등했고 팬디트 CEO는 지난 18일 "끝에 다와간다"고 말할 수 있었다. 형식적으로도 사모펀드에 대한 대출 채권이 LBO 채권보다는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은행 정상화 아직 멀었다
칼라일 그룹의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회장의 말을 들어보면 심각함이 보다 절실하게 와 닿는다. 루벤스타인은 은행들의 LBO 채권 매각에 적극 참여하길 원한다. "장부가보다 싸게 팔고 여기에 좋은 금리에 대출까지 해준다"는 것이다. 다른 사모펀드도 마찬가지 마다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이런 일련의 LBO 채권 매각이 끝날 때까지 은행들은 채권 발행 등에 붙는 수수료를 포기해야할 전망이다. 조사에 따르면 하이일드 채권의 경우 평균 2.5%의 수수료를 얻을 수 있다. 루벤스타인은 "많은 금융기관들이 장부에 많은 구멍을 갖고 있다. 그런데 아직 표면조차도 손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바닥'에 가까이 간다고 말하기 보다 바닥은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은행의 대출은 지난 1년간 73%나 줄었다. LBO 대출은 1분기중 850억달러였다. 일년전에는 3200억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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