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 손발묶고 껍데기만 통합하라고?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배성민 기자 2008.04.2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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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을 숨쉬게 하자] <제1부> (1)'규제본능' 자통법

"자본시장통합법과 그 시행령을 뜯어보면 `대세에 따라 허용은 하겠지만 너희를 믿지 못하겠다'는 기존 인식이 그대로 적용됐다. 외환위기 등을 겪으며 사전 위기관리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는 점을 감안해도 금융당국의 이같은 접근자세는 납득하기 힘들다."
대형 증권사 한 임원이 최근 발표 된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 시행령(안)에 던진 비판이다.

◇여전히 증권사는 못믿겠다?=자통법과 그에 따른 시행령은 증권업과 관련해 기존의 여러 제약을 풀어주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경쟁을 촉진해 대형화·전문화를 유도해 국내에서 글로벌 IB가 출현하도록 한다는 취지에서다.



기존에 원칙적으로 금지하던 여러 제약들을 해소했다. 금융투자업자의 겸영업무를 확대해 증권인수와 기업인수·합병중개 등에서 필요한 신용공여, 지급보증업무, 대출중개 등을 가능토록 허용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증권사는 인수·합병(M&A) 업무와 관련해 자기자본을 동원해 거래(딜)을 지원할 수 있게 된다. M&A 업무를 어렵게 하던 걸림돌이 다소 없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제약을 풀어준다해도 대부분 '제한적'이란 단서 조항이 달려 있다. "걸림돌을 완전히 제거할 경우 증권사들이 사고를 칠 것이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통법 시행령에 담긴 '정보차단벽 설치' 규정이다. 금융당국은 금융투자업자와 투자자간 이해상충을 막기 위해 정보교류차단장치(Chinese-wall)를 설치하도록 강제할 방침이다. 새롭게 겸영이 허용된 투자매매·중개업과 집합투자업 사이에, 그리고 기업의 미공개정보 취득 가능성이 큰 기업금융 부문과 다른 업무간에 정보교류를 차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를 위해 정보교류 차단장치 설치대상 부문간에는 정보교류, 임직원 겸직, 사무공간 및 전산설비 공동이용 등을 금지하기로 했다.

이는 금융당국이 증권사를 얼마나 믿지 못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차단벽을 설치하지 않을 경우 각종 '변칙 플레이'가 만연할 것이란 우려를 담고 있다. 기업금융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고, 다른 금융투자상품 매매에 대한 정보를 활용해 선행매매를 할 것이란 기우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는 "이처럼 정보차단장치를 법령에서 의무화하고 있는 경우는 전 세계적으로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며 반발하고 있다. 선진 자본시장에서는 이를 자율규제 형태로 풀어가고 있다. 증권사가 불건전 영업행위를 할 경우 시장에서 이를 인지하기 마련이고, 결국 자율적인 퇴출 시스템이 작용할 것이란 설명이다.

다른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이같은 규정은 증권사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편의적 조문에 불과하다"며 "증권사들은 어떤 게 고유재산운용업무인지 명확히 알 지도 못한 채 금융투자업과 분리시켜야 한다는 시행령(안) 때문에 기존 조직이나 업무를 완전히 뒤엎어야 하는 부담을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오는 8월 4일부터 시작되는 금융투자업 인가 및 등록 신청시 내부통제기준을 제출해야 하는데, 조직을 어떻게 조정할 지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결국 이 조항은 증권사의 손발을 꽁꽁 묶어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게 되고, 궁극적으로 국내 금융투자업자의 발전의 가로막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증권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증권사를 믿지 못해 탁상공론식으로 마련한 조항이 증권사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IB 손발묶고 껍데기만 통합하라고?


◇"육성할 의지는 있나"=금융당국은 증권사의 영업용 순자본비율(NCR) 규제도 제한적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신탁업 수행을 위한 NCR 200% 제한을 없애고, 장외파생업무시 요구했던 NCR 300% 제한을 200%로 완화할 방침이다.

하지만 위험관리 능력이 제고될 때까지 3년간 한시 적용한 뒤 이후 NCR 요건을 유지할 지 여부를 재평가하기로 했다.



증권업계는 "갈수록 그 규모가 커지고 있는 장외파생 시장에서 하루빨리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데, NCR을 규정이 여전히 남이 있게 될 경우 자기자본투자(PI)는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형 증권사 한 임원은 "제조업체로 비유하자면 NCR 규정은 비생산적인 자금을 쌓아놓으라는 것인데, 투자 없이 어떻게 규모와 수익을 늘릴 수 있는지 묻고 싶다"며 "금융당국은 NCR을 완전 폐지하면 증권사의 부실화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지만 그것은 일부 비우량·소형 증권사의 경우일 것"이라고 말했다.

NCR 규정의 유지 등은 부실 가능성을 원천봉쇄해야 한다는 취지 아래 우량·비우량, 대형·중소형 증권사간 차별화를 무시한 채 일괄적용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금융회사(증권사)에 대한 원죄론적인 불신과 획일·평등주의적 접근이 맞물려 글로벌 IB로 발전하는 데 치명적인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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