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지난 30년, 이젠 여행 다닐 터"

머니투데이 최종일 기자 2008.04.23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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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꿈땀]김동녕 예스24·한세실업 회장

김동녕(63ㆍ사진) 예스24ㆍ한세실업 회장은 `문화CEO`다. 최근 몇 년간 예스24를 통해 문화유통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그렇다. 하지만 그저 업종만으로 '문화' 타이틀을 붙인 건 아니다.

무던한 외모에 차분한 말투, 여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문화예술인의 풍모였다. "경영서적에는 흥미가 없고, 여행서적에 손이 더 간다"는 김 회장을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치열했던 지난 30년, 이젠 여행 다닐 터"


◇"기자를 해볼까 생각도 했었죠."

김 회장이 근무하는 한섬빌딩 회장실에 들어서자 한쪽 벽에 있는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내부에는 책들이 가득 차 있었다. 책상 뒤편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시 한 구절이 담긴 김지하 시인의 묵란화 한점과 천경자 화백의 그림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저 그림은 제정구씨 추모모임으로 열린 그림 전시회에서 사왔습니다. 김지하 씨가 비싸게 내놓지 않았길래 사왔죠. 천경자씨 그림은 로맨틱하고 감상적이죠. 전시회 들렀다가 실물은 비싸서 못 사고, 저건 포스터라 사왔죠."

김 회장의 문화에 대한 관심은 학창시절부터 남달랐다. 그는 특히 글 쓰기에 소질이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문예부와 신문반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경기중 3학년 때에는 '4.19혁명 시선'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시집에 두편의 시를 싣기도 했다.

대학(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해서도 문예서클 활동은 계속 했다. 진보 지식인 신영복 교수와는 이 시절에 시화전을 함께 하기도 했다. 관심이 이렇다보니 대학 졸업 즈음에는 신문사에 취업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다 무역업을 했던 큰 아버지의 조언으로 미국 경영대학원에 진학했고, 이후에 사업을 시작했다.


경영인으로서 살아온 삶에 다른 아쉬움은 없었을까. 그는 이 질문에 “만족한다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라며 모호한 대답을 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조금은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70년대 초반은 박 대통령이 수출 드라이브를 걸 때였죠. 남대문에 코트라 건물이 있었는데, 거기를 지나다보면 수출목표액과 달성액이 전광판에 보일 정도였습니다. 수출 많이 하면 애국자 대접을 받았습니다. 밤새서 일하는 데 보람을 느꼈죠."



◇"CEO는 큰 테두리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김 회장은 1972년에 한세실업의 전신인 한세통상을 세웠다. 당시 나이 28세였다. "아침에 눈 비비면 나왔습니다. 통금 직전에 집에 들어가서 숟가락 놓기 무섭게 잠들었고요, 휴일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7년을 살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다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죠."

밤낮 없는 근무에 회사는 성장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1973년과 1978년 두 차례 오일쇼크는 넘기 힘든 시련이었다. 2차 오일쇼크로 회사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30여년 회사를 꾸려가면서 그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그는 “당시엔 경험도, 실력도 부족했다”고 패인을 분석했다.



절치부심한 김 회장은 1982년 한세실업을 설립하고 다시 일어섰다. 그 때 마음속에 두 가지를 새겼다."당시에 수출기업에는 은행이 돈을 잘 꿔줄 때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실력 이상으로 사업을 키우는 우를 범하기 쉬웠죠. 은행가서 대출 받을 시간이 있으면 경영에 더 신경 쓰자고 다짐했었죠."

김 회장은 “여유를 찾으라”는 주위의 충고도 받아들였다. "신용보증에 계셨던 분인데 저한테 그러시더라고요. 대표라는 사람이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면 뭘 제대로 볼 수 있겠느냐고요. 정신도 맑고 여유도 있어야 일의 테두리를 보지 않겠느냐'는 지적이었죠."

한세실업과 예스24의 내실경영, 그리고 김 회장이 생각하는 CEO의 역할에 대한 철학은 이 시절에 만들어졌다. 한세실업은 설립 후 단 한번의 외도도 없이 의류사업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수출 비중이 100%이며, 지난해 매출은 5000억원이다. 예스24는 2003년 한세실업에 인수된 후 일년만에 흑자로 전환됐으며, 연평균 25.4%의 외형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젠 여행 좀 다니고 싶습니다."

김 회장은 경영 현장에서는 반 발자국쯤 물러서 있다. 한세실업은 4년전에 회장으로 물러나면서 전무 중 한 사람에게 대표이사 사장을 맡겼다. 현재 상장 절차를 밟고 있는 예스24는 올 하반기에 대표이사를 공모할 계획이다.

"1982년 창업해서 권한을 최대한 이양하려고 했습니다. 팀장 선에서 업무의 95%는 결정됩니다. 실수도 있을 수 있지만, 의사 결정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죠. 그런 조직에서는 사람들이 잘 큽니다."



앞으로는 예스24의 해외 진출 업무에 주력할 방침이다. "먼 미래를 보면 해외 진출을 해야 합니다. 한세실업은 인도네시아, 베트남에 진출한 지 오래됐습니다. 한세의 지역 노하우를 예스24에 접목하는 일을 할 생각입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 회장에게 읽을만한 책 소개를 부탁했다. 그의 손에는 태국과 베트남 여행에 관한 책이 있었다. "전 여행관련서를 좋아합니다. 일종의 대리만족이죠. 앞으로는 책도 많이 보고 음악도 듣고 이런 나라에 여행도 다녀야죠." 그 말에 치열했던 지난 30년 세월이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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