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FTA 협상 재개? 산 넘어 산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송선옥 기자 2008.04.21 16:28
글자크기

(종합)

한일 정상이 21일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재개를 위한 실무협의에 합의했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농수산 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일본 집권 자민당의 농어촌 출신 의원들, 이른바 '농수산족'이 걸림돌이다. 대일 무역수지 적자의 '주범' 부품·소재 분야에서의 한일간 경쟁력 차이도 문제다.

◆日수산족, 최대 걸림돌= 일본 농수산 시장이 개방되지 않으면 한일FTA가 체결되더라도 우리나라 입장에서 별로 얻을 게 없다. 세계 최강의 '제조업국' 일본과 무관세로 맞붙을 경우 제조업 분야에선 무역적자 확대가 불가피하다.



한일FTA로 양국간 관세·비관세 장벽이 철폐될 경우 대일 무역적자는 61억달러 추가로 불어날 것이라는 게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추정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는 298억8000만달러였다.

정부가 그동안 "일본이 농산물 시장의 90% 이상을 개방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FTA 협상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지켜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농수산족'을 중심으로 한 일본 정계는 농수산물 개방에 강하게 반대해왔다. 지난 2004년 11월 한일FTA 협상이 중단된 것도 일본의 농수산물 개방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은 농수산물 분야를 56%만 개방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한미FTA 협상 타결 직후에도 일본 정부는 한국과의 FTA 협상 재개를 고민했지만 정치권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손열 연세대 교수(국제학대학원)는 "일본의 '농수산족'은 일본 정계에서 가장 강력한 비토권을 갖고 있다"며 "이들이 농수산물 시장의 개방을 쉽게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체결땐 전자·車·기계 타격= 일본 정계의 반발을 뚫고 한일FTA가 체결되더라도 그 이후 상황 역시 녹록치 않다.

당장 전자부품 분야에서 타격이 불가피하다. 첨단 전자부품에 있어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일본에 비해 '절대열위'에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일본의 기술력을 100%로 봤을 때 한국의 리튬이온전지 기술은 78%, 바이오센서는 71%, 첨단 무선인식(RFID)은 68%에 불과하다. 한일FTA가 발효될 경우 관세장벽 덕에 그나마 버티고 있던 국내 중소 전자부품업체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완성차, 부품 업계 모두 피해를 볼 수 있다. 토요타, 닛산, 혼다 등의 일본 자동차들이 무관세로 들어올 경우 현대·기아차, GM대우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가격인하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자동차 부품업계도 구조조정에 직면할 수 있다.

기계업종은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분야다. 특히 만성 대일적자 분야인 펌프, 밸브 쪽에서는 수입이 급증할 수 있다. 반면 농수산물과 의류 분야는 한일FTA가 맺어질 경우 수출 증가로 혜택을 볼 수 있다.

◆사전대책 효과가 관건= 1990년부터 2006년까지 누적 대일 무역적자 규모는 2287억달러였다. 이 가운데 부품·소재 분야의 적자가 1780억달러로 78%에 달했다. 다 기술격차 때문이다. 한일FTA로 시장이 열리면 적자는 더 커질 수 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모르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서 한일FTA의 사전대책을 풀어놓은 것은 이 때문이다. 골자는 국내에 일본 기업 전용공단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본의 앞선 부품·소재업체들을 오히려 한국으로 불러들이겠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무역적자를 줄이고 기술을 전수받겠다는 복안이다. 그동안 나온 대일적자 대책이 '일본 기술 따라잡기' 일색이었던 것에 비춰 '발상의 전환'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이 해법이 제대로 먹혀들지 여부다. 만약 효과를 보지 못한 채 한일FTA가 체결된다면 적지 않은 후유증이 우려된다. 김양희 KIEP 연구위원은 "만약 현 상태에서 한일FTA가 발효된다면 수출-내수, 완성재-부품·소재 분야 간의 제조업 양극화가 고착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