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토오야마 마사히데 박사의 생전 모습과 동상 사진. 언거베이 생태
관광지구 박물관 전시층 중앙에 걸려 있다. 중국에서 살아 있는 인물을
동상으로 만든 건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 외에 토오야마 박사가 유일하다고 전해진다.
관광지구 박물관 전시층 중앙에 걸려 있다. 중국에서 살아 있는 인물을
동상으로 만든 건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 외에 토오야마 박사가 유일하다고 전해진다.
1998년, 고(故) 도오야마 마사히데(遠山正瑛) 박사는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강연을 듣고 오카 타카시(58) 전 일본 야마나시현 자원봉사자협회장은 중국의 사막으로 달려갔다.
"인연이 닿지 않아 도오야마 박사를 생전에 뵙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그와 함께 우리가 어렵게 되살린 숲을 지켜내고 싶습니다."
중년의 일본인을 중국의 사막으로 불러들이고, 중국 청년의 마음에 그리움을 불러일으킨 사람. 도오야마 박사는 2004년 향년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남은 뜻은 중국의 사막에서 푸르게 피어나고 있었다. 20여년 전 쿠부치 사막의 영향으로 온통 모래로 뒤덮였던 언거베이 마을엔 지금 포플러, 소나무를 비롯한 나무들이 군림(郡林)을 이루고 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갔던 사람들도 속속 돌아왔다. 언거베이 주민들은 한 때 사망선고를 받고 버려졌던 이 곳을 생태관광지구로 보전하고 수수나 감자 외에도 토마토·수박·포도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도오야마 박사는 당시 여든살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중국 사막과 일본을 오가면서 나무 심기 운동을 이끌었다.
일본 돗토리대학 원예학과의 명예교수였던 그가 이 지역을 찾은 것은 83세이던 1989년. 그는 언거베이 지역의 토질과 여기에 잘 살 수 있는 수종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듬해인 1990년 그는 자국에 돌아가 '일본사막녹화실천협회'를 결성, 일본에서 '나무심기 관광' 사업을 구상·실현하기에 이른다. 이 프로그램에 의해 일본 기업들과 시민, 환경운동가들이 언거베이를 찾았다.
사업 5년여 만인 1995년 일본인들이 심은 나무는 100만 그루를 넘어섰다. 1998년과 2001년엔 각각 200만, 300만 그루를 뿌리내리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헌신은 '가깝지만 먼 나라'였던 한ㆍ중ㆍ일 세 나라를 이어나갔다. 파죽지세 같은 사막의 확장에 손을 거의 놨던 중국 정부는 지난 2003년 법을 제정해 고비·타클라마칸 등 자국 면적 4분의 1을 넘게 뒤덮은 사막을 퇴치하는 데에 나섰다.
한국에선 2002년 권병현 전 주중 한국대사를 주축으로 '한·중 미래의 숲'이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과 함께 '쿠부치 사막 녹색장벽 만들기'에 뛰어들었다.
지금도 아시아 자원봉사자들과 SK, 대한항공, KTF 등 한국 기업들은 중국의 사막에 나무를 심는다. 쿠부치에 모인 세 나라 사람들의 맘엔 도오야마 박사의 10년 전 목소리가 생생하게 울린다.
"녹색으로 우거진 나무를 황량한 모래벌판으로 만든 주범은 바로 인간입니다. 따라서 사막을 다시 푸르게 하는 것도 인간의 책임입니다."
↑ 고(故) 토오야마 타다히데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