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해진 금융거래, 월급통장 대접 받겠네

머니투데이 이규창 기자 2008.04.2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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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스토리]증권사 소액지급결제 허용

'급하게 송금할 일이 생긴 A씨는 부족한 금액을 증권사 계좌에서 이체하려 했으나 업무시간이 끝나 인출하지 못했다'

'B씨는 이자가 높은 증권사 CMA로 월급통장을 옮기려 했으나 대출금 이자와 보험금 자동이체가 되지 않아 어쩔수 없이 기존 은행통장에 잔액을 남겨둬야 했다'

'무이자'에 가까운 은행의 보통예금에서 연 5%대 이자를 주는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로 월급통장을 옮기려 할 때 부딪치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더 이상 이런 문제들은 겪지 않아도 될 전망이다. 최근 정부가 입법예고한 자통법 시행령이 증권사에 '소액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액지급결제 업무가 허용되면 은행이 아닌 증권사 계좌에서도 공과금을 비롯한 자동이체 결제를 할 수 있게 되고 각 영업점에서 지로 요금납부도 가능해진다. 물론 이는 대부분 증권사가 은행과 제휴한 가상계좌를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여서 소비자에게 당장 변화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소액지급결제 업무가 허용되면서 증권사 CMA계좌와 은행의 예금계좌의 표면상, 기능상 실질적으로 차이가 없어졌다. 이 점은 '얇은 유리지갑'에 혜택은 쥐꼬리였던 직장인들의 월급통장이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게 됐다.
편해진 금융거래, 월급통장 대접 받겠네


◆증권사 소액결제업무 허용…불편함 사라진다



하루만 맡겨도 은행 정기예금과 맞먹는 연 5%대 이자를 주고 입출금과 자동이체 등 각종 수수료가 전혀 없으며 단일 최대은행인 국민은행보다 많은 전국 2000여 지점에서 자유롭게 거래 가능하다. 바로 자통법 시행 이후 등장할 '무적의 월급통장'의 청사진이다.

아직은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많아 당장 시행되기는 어렵지만 내년 2월 자통법 시행으로 실현 가능해진 내용들이다.

현재 증권사 CMA계좌는 단 하루만 맡겨도 최고 연 5%대의 높은 이자를 지급하고 있다. 이때문에 몇 푼이라도 아쉬운 직장인들은 앞다퉈 은행에서 증권사 CMA로 주거래 통장을 옮겼고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자금을 붙들기 위해 은행은 거의 무이자에 가깝던 보통예금 금리를 0.1% 올려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권사 CMA계좌는 여전히 은행의 보통예금에 비해 금리 면에서나 투자기간과 금액규모 등 제약요인에서 훨씬 앞서 있다. 단 몇 가지 '불편함' 때문에 주거래 통장을 옮긴 뒤에도 은행에 잔고를 남겨둬야 하는 번거로움이 남아있다.

그중 첫째는 은행 등 타금융사와의 직거래나 자동이체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제휴 은행의 가상계좌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지만 몇몇 보험사 등 금융기관과의 거래에는 제약이 따른다.



직장인 A씨(30)는 지난해 국민은행에서 동양종금증권의 CMA로 월급통장을 바꿔탔다. 높은 이자는 물론 적립식 펀드에 가입했더니 각종 수수료도 받지 않아 혜택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 신용카드 대금 등 자동이체를 모두 증권사 CMA로 돌렸지만 외국계 보험사의 보험료와 국민은행의 기존 대출금 이자납부는 가상계좌를 통해 자동이체가 되지 않아 별 수 없이 기존 은행계좌에 매달 잔액을 남겨둬야 했다.

증권사 CMA 계좌에 '소액지급결제'가 허용되지 않아서 비롯된 불편함은 없어진다는 얘기다. 은행과의 경쟁을 위해 '표면상'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이제는 실제로 증권사에만 월급통장을 두고 사용해도 불편함이 없게 된다.

◆'무적 월급통장' 등장을 알리는 서막…금융서비스 '질' 높아질까



증권사의 소액지급결제 허용 문제는 표면적인 변화보다 이후 뒤따를 증권, 은행간 월급통장 확보 경쟁과 소비자 금융서비스의 질 개선이라는 '나비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은행과 증권 계좌의 실질적인 기능 차이가 없어지는 만큼 은행과 증권사들의 '밥그릇 전쟁'은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다. 개별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적금이나 펀드, 보험 가입, 각종 결제와 대출 등 연계된 사업영역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월급통장'을 붙잡아야 한다는 게 업계의 인식이다.

이 때문에 일부 은행에서는 이미 기존 월급통장에 한 해서 CMA에 준하는 높은 금리를 제공하거나 수수료 부분 면제 등의 혜택을 주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욱 서비스와 금리 경쟁이 본격화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굿이나 보다가 떡만 먹으면 되니 더 없이 좋은 일이다.



아무래도 후발주자인 증권사들이 파격적인 금리와 서비스를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예치기간에 관계없이 5%대 이자를 지급하는 것은 물론 자금이체와 CD기 이용 수수료를 면제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은행에 비해 영업점 숫자가 적지만 증권사간 제휴를 통해 전국 2000여개 지점을 자유롭게 이용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민은행 점포수가 1200여개인데 증권사 점포수는 최근 급증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모두 합쳐도 2000여개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이같은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과 활발히 제휴하고 있고 소액결제서비스가 시작되면 증권사 전 영업점 CD기를 공동운영하는 등의 빅딜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수대에 맞춰 자동으로 월급통장에서 펀드를 매수하고 매도하는 등의 부가 서비스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의 강점을 살려 펀드 가입과 환매시점 결정에 고민하는 소비자를 대신해 일정 금액 이상 예치금을 약정대로 펀드에 투자하는 방식 등으로 서비스가 확장될 수 있다.



내년 초면 소비자들은 은행, 증권 등 '무적 월급통장'의 혜택을 주는 금융사를 골라 원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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