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장 '일괄사표' 무성한 뒷말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반준환 기자 2008.04.1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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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표냐 사의냐' 형식도 논란…원칙과 현실사이 혼선

정부가 금융 공기업 수장들에게 일괄사표를 받는 데 대해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제사표가 현행 공공기관운영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가 하면 기관장의 거취표명 방식이 '사표'냐 '사의'냐를 놓고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급기야 금융위원회는 16일 일부 기관장에 대해 "사표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내용의 해명자료까지 내놨다. 사상 초유의 일괄사표가 이래저래 무성한 뒷말을 남길 전망이다.



◇'사표' vs. '사의'=금융위 산하 기관장과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모두 사표를 제출하거나 사의를 표명했다. 김창록 산업은행 총재가 지난 12일 사표를 제출했다고 공식 발표한 게 시작이었다. 윤용로 기업은행장, 박대동 예금보험공사 사장,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은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철휘 사장의 경우 '사의 표명'으로 알려지자 '사표 제출'이라고 바로잡았다. 새 정권이 출범하면 기관장들은 재신임을 물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박병원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박해춘 우리은행장, 정경득 경남은행장, 정태석 광주은행장 등 예보가 대주주인 금융회사 CEO들은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금융위는 해명 자료를 통해 "예보 산하 기관장에 대해 법적인 임면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 이들의 사표를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왜 사의표명=민간기업의 CEO 선임은 2가지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관에 따라 이사회가 후보자를 선임하거나 주주총회를 통할 수 있다. 모두 경영위임 계약의 형태를 띤다. 임기 도중 퇴직할 경우 이사회에 사임서를 제출하면 된다.
 
금융 기관장들은 다르다. 선임과 퇴임 모두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른다. 금융 공기업의 경우 금융위원장이 후보를 제청하면 최종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임명 여부를 결정한다. 사표 제출도 제청권자인 금융위원장을 통한다.

우리금융은 민간기업 방식으로 CEO를 선임한다. 이사 추천위원회를 통해 이사진을 구성한 후 대표이사로 박 회장을 추천해 주주총회 승인을 받았다. 우리금융 내부에서 한때 박 회장 등은 사표든 사의든 정부에 제출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박 회장의 경우 상장사 CEO여서 사표를 제출할 경우 공시문제 등도 있어 사의만 표명했다고 우리금융측은 전했다.


◇원칙과 현실 사이=문제는 정부가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포함한 계열 은행장 임명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는 점이다. 법상 이들의 사표 제출을 강제할 수 없지만 관행상 일괄사표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운영법 제정 등으로 관행을 현실화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됐다. 또한 과거 정부에서 일정한 시한을 두고 사표를 일괄적으로 받은 경우가 없다는 점도 잡음을 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른바 관치금융이 성행하던 시절에도 잔여임기를 봐가며 순차적으로 '표나지 않게' 물갈이하는 방식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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