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세우기 위한 지지대

김홍일 사회투자지원재단 상임이사(성공회 사제) 2008.04.1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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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머니칼럼] K씨를 일으킨 따뜻한 연대와 투자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한 지지대


유난히 작은 체구의 K씨는 어릴 적 당한 사고로 왼쪽 눈을 실명한 후 50대 중반이 되기까지 생존을 위해서 안 해본 일이 없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애 때문에 어느 한 직장에서도 오래 머물 수 없었고, 이일 저일 전전하며 살다가 급기야 최저생계보호 대상자가 되었다.

장애가 있기는 하지만 노동능력이 있는 K씨는 자활근로를 통하여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도시락과 출장 뷔페를 하는 자활공동체에서 일을 하며 가끔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비하적인 발언 때문에 분노하기도 하고, 동료들이 작업장에서 일어나는 실수들을 자신에게 돌려댈 때에는 직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때문에 과도한 오기를 부려가며 싸움도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같은 자신을 인내하며 기다리고 받아 준 공동체 덕분에 한 사람의 성실한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K씨가 속한 공동체는 이번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준비하고 있다.

K씨가 한 사람의 여엿한 직장인이 되고, 그가 일하는 자활공동체가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엔 K씨 자신과의 싸움과 노력도 있었지만, 해당 지자체의 지원과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의 헌신, 그리고 주변에서 그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공감하였던 선한 사람들의 협력과 도움이 있었다.



K씨는 이제 결식노인들과 아동들을 위한 정성어린 식사를 준비하고 배달하며 가난으로 인하여 자신이 받았던 상처들을 치유하고 있다. 또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던 공동체를 지역과 사회를 위한 기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발표한 2007년 ‘고용전망 보고서’에 의하면 조사대상 회원국 20개 나라 가운데서 한국은 소득격차가 세 번째로 큰 나라이고 이같은 양극화의 추세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언제든 최저생계 이하로 전락할 수 있는 경계선 주변을 맴도는 가난한 사람들, 높은 취업장벽 앞에서 늘 좌절하여야 하는 장애인들, 학교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 육아와 생계를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한부모 가정들, 빈곤의 악순환 고리에 고착되기 쉬운 빈곤 아동들, 실업과 반실업을 넘나드는 불안정 노동자들....


이들은 성장이 유일한 화두처럼 회자되는 이 시대에 K씨처럼 성장의 뒤안길에 어두운 그림자로 남겨질 위험이 큰 사람들이다.

우리 사회에선 점점 더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기업의 성장만으로는 실업과 빈곤의 해소가 어려운 구조로 산업과 노동시장은 재편되었다. 아직도 많은 복지지출이 요구되고 있지만 공공의 재정만으로 다양해지고 늘어가는 국민들의 복지욕구를 해결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지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시대에 요청되는 길은 상생과 협력이다. 공공과 기업과 시민사회의 협력 없이는 새롭게 제기되는 도전과 문제들을 해결할 길이 없어 보인다.

K씨와 그가 속한 공동체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힘이 되었던 건 우선 지자체의 생업자금 융자와 기업의 재정적 후원이었다. 이는 유럽만이 아니라 우리사회에서도 사회통합을 위한 공공과 민간의 협력을 통한 기금조성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체가 만드는 도시락과 뷔페를 주문하여 소비하는 우호적 소비자가 있었고, 공동체 식구들이 자생의 힘을 키우는 데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는 전문가가 있었다.



또, 육아나 간병, 상담 같은 서비스들을 제공하여 공동체 식구들에게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힘이 되어 주었던 지역의 복지단체들과 시민단체들도 있었다. 이런 연대들은 사회통합을 위한 지역사회 네트워크 구축과 인적개발을 위한 투자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K씨가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까지 함께 지지대가 되어주었던 지역사회의 여러 손길들을 전체 사회로 확장시켜가기 위한 연대와 투자가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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