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뿔 났다고? 엄마만 뿔 났나?

이건희 외부필자 2008.04.14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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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의 행복투자

투자의 시대와 자산 차별화의 시대가 되다보니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 관련된 이야기들도 가끔 드라마에 등장하곤 합니다. 예전에는 직업을 비하하는 이야기들이 드라마에 가끔 등장하여 물의를 빚었었는데 지금은 부동산 시장 차별화가 심하게 진행되고 난 다음이라서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얘기도 등장합니다.

지난 2월16일 KBS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제5회 방송에서는 미아리 고개 넘어 지역, 길음동을 비하하는 장면이 방영되어 물의를 빚은바 있습니다.



상당한 부잣집 사모님으로 등장하는 고은아(장미희)가 아들인 김정현(기태영)이 세탁소집 딸인 나영미(이유리)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장면이 방영되었습니다.

고은아 남편(김용건)이 아들로부터 전화를 받으면서 “너 거기가 어느 방향이야?” 옆에 있던 아내, “그 집이 어디라는데요?” 남편, “어, 길음동” 아내, “거기가 어디에요?” 남편, “미아리 쪽, 돈암동에서 미아리 고개 넘어가서” 아내, “아~~ 됐어요. 하면서 고은아는 인상을 쓰고 손으로 머리를 짚으면서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해 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 방송이 나간 직 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길음동 사는 사람은 모두 거지냐? 도대체 무슨 의도로 길음동 운운하며 못사는 사람들의 집합소인 것처럼 매도하는 것이냐?” “토요일 황금시간에 이런 대사를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반복하여 계속 강조하면서 내보낸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생각들이 있길래 이런 방송을 내보내고 시청자들을 울분시킨다는 말인가? K작가 이하 모든 관계자들의 사과방송과 재발 방지장치 수립 및 시정을 요구한다.”

“공영방송 이라며 이렇게 편 가르기, 이분화하기에 더하는 게 공영방송인가요? 진짜 역겹습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 시청하다가 이 대사에 흠칫하여 옆 자리의 남편이나 부인의 눈치나 표정을 살폈을 시청자들에게 일말의 미안함이 없는지도 묻고 싶습니다."

분개하면서 이런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이런 반응은 일부에서만 보도가 되었을 뿐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묻혀 지나갔습니다.


과연 이것이 과잉 반응이고 드라마 내용을 지나치게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경제 문제에 앞서서 편 가르기와 양극화로 인한 계층 사이 갈등임이 주지의 사실입니다.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단순히 경제 문제라면 지금보다 훨씬 못살던 시절이 있었던 것과 비교할 때 지금의 서민들이 왜 삶을 힘들어하는지 납득하기 힘든 것입니다.

국가 전체적인 GDP가 올라가고 경제수준이 향상되고 대기업의 연간 순이익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음에도 양극화의 심화 속에서 상대적인 빈곤감은 더 커지기 때문입니다. 화합을 위한 길을 모색하면서 나가는 것이 국가적으로 커다란 과제인 시대에 그와는 반대로 양극화의 모습을 자극시키는 분위기가 공공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부적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 사석에서 얘기가 오고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따라서 일부 시청자의 반응을 과잉반응으로 치부해서는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드라마나 대중 예술이라도 국가적인 분위기와 시대적인 분위기를 최소한도로 감안해야합니다. 독일의 유태인 학살이나 유태인 비하를 정당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이스라엘 TV 드라마에 방영되는 것을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요. KBS1 TV의 “TV비평 시청자 데스크(251회, 4월12일)”에서 미아리 고개 넘어 지역의 비하 장면에 대하여 KBS드라마1팀의 모 PD는 다음과 같이 소견을 밝혔습니다.

"사실감을 주기 위해서 특정 지역을 언급한 것인데....사실감을 주지 않고 전혀 서울시내에 없는 지역을 얘기를 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까 어떤 특정 지역 주민들한테 조금 반감을 가질 수 있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드라마는 드라마로서 봤으면 좋겠습니다." 사실감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으니 드라마에서 묘사한 그 지역에 대한 표현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비록 잘 살지는 않지만 유명한 학술상도 받을 정도로 학식이 무척 높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인품의 사람인데 연예인과 드라마 PD에 대해서는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주인공의 딸이 드라마 PD와 결혼하려고 할 때 반대를 하고 그 과정에서 “결혼하지 마. 드라마 PD라면 여자 탤런트들과 그렇고 그런 깊은 관계를 수없이 많이 가졌을텐데 왜 하필이면 그런 직업의 남자와 결혼하려고 하니” 이런 식으로 반대의 이유가 표현된다면 KBS드라마 PD측에서는 사실감 있는 표현에 불과한 것인데 하면서 쉽게 받아들이고 방송에 내보낼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될 것입니다. 많은 대중들을 상대로 하는 일에서는 자신의 입장과 이해 관계에 따라서 판단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방송 여러 군데 출연하고 있던 조영남씨가 2005년에 ‘맞아 죽을 각오로 쓴 100년 만의 친일선언’을 출간한 뒤에 일본 산케이(産經)신문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독도문제에서 냉정히 대처하는 일본을 보면 일본 쪽이 한수 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서 파문을 일으켰던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발언이 나온 뒤 KBS '체험 삶의 현장'에서 조영남씨를 빼라는 요구가 네티즌들로부터 나왔습니다.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인만큼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조영남씨가 진행하는 것은 더 이상 불필요하다면서 시청자들은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심지어 한 포털사이트에서는 '조영남 방송계 퇴출요구 서명운동'까지 진행되었습니다. 그 뒤 실제로 조영남씨는 그 프로그램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했습니다. 다행히 조영남씨는 자신의 발언으로 국민과 해외동포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린다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지금은 방송에 복귀했지만 그 당시 일을 회고할 때에는 경솔했음을 여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 조영남씨의 발언에 대해서 사람들이 과잉반응이었다고 치부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과잉 반응 여부는 독도문제가 국민들 마음속에서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이처럼 많은 국민들이 관계되는 일에서는 국민 정서에 반하는 것을 삼가야 하고 전체 국민의 숫자보다는 적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그 지역 정서에 반하는 것을 행해도 되느냐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좀 더 심각한 경우를 비유로 들면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경우는 비판받아야하고 적은 사람을 죽이는 경우는 넘어가도 되는지 생각해봐도 됩니다.

사소한 문제가 아닌 심각한 문제에서는 남에 대한 배려를 해줌이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중요한 일인 마당에 공공의 장소에서 수많은 시청자들이 보는 프로그램에서 남에 대한 배려쯤은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온당한지 짚어 봐야 할 것입니다. 혹시라도 정말로 그러한 자세로 방송이 이루어진다면 우려할 일입니다.



요즘 세상에 방송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기 때문입니다. 지역 간 차별화가 심각하지 않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자산 양극화로 인한 지역 간 차별화의 후유증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되어있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특정 지역에 살다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 왔던 사람이 팔고난 아파트값은 크게 오르고 구입한 집값은 오르지 않음에 정신적으로 고통을 심하게 겪는 사례로 드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자살한 사람 이야기도 신문에 보도된 적 있습니다.

서울 근처에 사는 사람으로서 제가 잘 아는 사람의 아파트에도 그러한 심리상태에서 떨어져서 죽은 사람이 있다고 얘기 전해 들은바 있습니다. 또한, 단순히 특정 지역의 집값이 많이 오른 것을 떠나서 사는 지역에 따라서 사람의 신분과 인간으로서의 품위까지 차별화되는 형태로 사회적 분위기가 진행되어온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방송과 언론에서도 그동안 특정 지역의 “입성(入城)”이라는 표현을 무수히 사용하면서 특정 지역을 성역화 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데 일조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본 드라마의 작가와 방송국 측에서 뒤늦게라도 경솔했음을 사과한다면 괜찮은 일이지만, 그와는 반대로, 드라마 안의 사실적 표현에 그냥 넘어가달라는 식으로 주문하는 것을 보면서 염려되기도 합니다. 대중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서 앞으로 사회적인 분위기가 화합으로 들어서느냐, 갈등의 심화로 들어서느냐로 갈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서울에서 미아리 고개 넘어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요즘은 어떤 사안에서건 차별화의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임을 간과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러한 차별화의 현상으로 인하여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조건을 가진 사람들을 비하하는 태도로 나타나고, 그에 대한 상대측의 자연스러운 반발심이 사회적인 여러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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