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유령법'까지 남겨두는 관료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2008.04.1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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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유령법'까지 남겨두는 관료


지금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화두 가운데 하나가 선진국 진입이다. 선진국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정부는 올해 6%의 경제성장을 목표로 정하였다.

목표는 목표일 뿐이니 나쁠 것이 없다고 본다. 다만 무리는 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을 뿐이다.
 
지금 우리는 선진국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대단히 막연한 인상만을 가지고 동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선진국을 생각할 때 우리는 먼저 소득을 떠올린다. 작년 우리의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를 넘었다고 하는데 새 정부의 목표가 4만 달러인 것을 보면 1인당 소득이 지금보다는 두 배 정도는 되어야 선진국이라는 생각들을 하는 모양이다.
 
기실 소득은 세계 여러 나라를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으로 나누는 기준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소득의 증가와 함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기존의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들이 혁파되고 문화는 진일보한 내용과 형식을 갖추게 된다는 점이다.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들에서 나타나는 이들 변화를 보면서 선진국 진입은 분명 우리가 목표로 삼을 만하다는 생각을 하여 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다 빠르게 큰 부작용이나 위기 없이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여야만 할까?
 
선진국은 결국 제도와 기술이다. 소득이 증가하는 것은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 그 기저에는 제도와 기술의 진보가 있다. 그런데 기술의 개발과 활용에는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실행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제도는 다르다. 규제개혁을 포함하여 선진국형 제도를 도입하고 정착시키는 것은 우리가 선진국을 지향하고 있는 지금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다.
 
규제의 개혁과 선진국형 제도의 도입과 정착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관료들이 있다. 관료들과의 접촉이 많지 않았던 평자로서는 이들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할 입장에 있지는 않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시절에 규제개혁 과정에 잠시 자문교수를 한 경험은 참으로 충격적이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장기신용은행법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장기신용은행은 다른 은행과 합병되어 존재하지 않는 은행이었기 때문에 이 법을 폐지하자는 안건이 있었다. 대다수 참석자들의 의견이 폐지 쪽이었으나 재정경제부의 한 과장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였고, 결국 그 과장의 뜻에 따라 장기신용은행법은 존치되었다. 유령의 법적 근거를 남겨둔 것이다.
 
지금도 장기신용은행법이 살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평자가 느낀 것은 관료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관료들은 유령 조차도 존치시킬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이 안 된다고 하면 우리는 유령도 없앨 수가 없다. 참으로 절망스럽지 않은가? 더욱 더 절망스러운 것은 이 나라에는 이들을 다스릴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제도의 선진화는 대통령만이 할 수 있다. 그 아래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패배의식은 평자만의 나쁜 버릇인지 모르지만. 얼마 전 대불공단의 전봇대 사건은 참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에는 대불공단의 전봇대가 무수히 많이 존재하며, 그와 같은 전봇대를 살리기 위하여 목을 메는 사람들의 집단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여 피력하지만 선진국은 제도와 기술이다. 단기적인 소득 증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핵심을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제도와 기술에 있어 성과는 더딜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눈 앞의 성과에 집착하다 보면 5년 뒤에 우리는 다시 같은 출발선상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올 해보다는 5년 뒤를 생각할 것을 거듭 충고하고 싶다. 이명박 정부 5년에 큰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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