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 생활서 얻은 아이디어로 '인생역전'

머니위크 배현정 기자 2008.04.2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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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스토리]강신기 슬로비 대표

-바퀴 두 개 달린 스케이트보드 '에스보드' 제작
-발명전시회 5개부문 수상, 수백억 로열티 따내

'노숙자에서 사장이 된 사나이'.

바퀴가 두 개 달린 스케이트보드인 '에스보드'로 대박신화를 이뤄낸 슬로비의 강신기(49) 대표. 그는 좋은 아이디어 하나로 인생을 9회말 역전시킨 행운의 발명가로 유명하다.



2004년 그는 벤처를 창업한 지 갓 1년을 넘긴 초보 경영인이었음에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 해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세계적 발명전시회(INPEX)에서 대상을 비롯한 5개부문을 휩쓸었고 수 백억원의 로열티 계약을 따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4년 여가 흐른 4.9 총선일, 서울 역삼동의 에스보드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최근 국내의 에스보드 열풍이 잠잠해졌지만 강 대표는 '짝퉁'과의 전쟁에 이어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하는 등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노숙 생활서 얻은 아이디어로 '인생역전'


◆ 특허상품으로 인생역전

"외환위기의 긴 어둠이 서서히 지나가고 경기가 풀리면서 레저산업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레포츠 기구를 만들자. 그게 에스보드 개발 동기죠."

충남 부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25세에 맨주먹으로 상경했다. 이후 봉제업무에서 연탄 배달, 막노동 등으로 고생하다가 한때 가맹점 12곳을 거느린 건강침대회사 사장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IMF가 그의 사업을 송두리째 집어삼켜 서울역 노숙자 신세로 만들었다.


그렇게 2001년 서울역 길바닥에서 맞이한 어느 봄날, 그는 아이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외발보드였다.'저것을 어른이 탈 수 있도록 만들면 어떨까'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즉시 고물상을 찾아가 고장 난 킥보드 하나를 얻었다. 손잡이를 잘라냈다. 두 바퀴만으로도 충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생각은 거기서 더 진전되지 못했다. 그렇게 시름하던 중 또 다시 길거리에서 뜻밖의 물건을 보게 됐다.

"물리학과 출신의 한 젊은이가 덩치가 큰 스케이트보드를 둘로 나눠 타고 다녔어요. 신기하게 합판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죠."

상품성을 직감했다. 게다가 이미 특허가 난 상품이었다. "개발자금을 확보하면 대가를 치르겠다는 조건으로 그 상품에 관한 특허를 넘겨받았죠." 일단 제품의 방향성이 잡혔다. 하지만 제품을 만들어낼 돈이 없었다. 주변인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다 낡은 널판지 갖고 무슨 사업을 하겠다고 그래?" 투자 유치는 커녕 욕 먹기 딱 알맞았다. 그는 우선 기존 고무줄을 내부 스프링 장착으로 바꾸는 등 수십개의 부품을 정밀하게 재설계해 다시 특허를 받았다.

하지만 그건 가시밭길의 시작일 뿐이었다. 제품화하려면 디자인비만 최소 수 천만원. 게다가 금형에 제품 홍보 비용 등까지 고려하자면 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인터넷에서 검색 후 무일푼으로 찾아간 디자인회사에서 한국디자인진흥원을 소개해줬고 여기서 3000만원을 지원받아 디자인을 개발한 뒤, 다시 한국기술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무려 15억원이라는 거액을 대출받아 마침내 제품을 출시했다. 그때가 2003년이었다.

◆ 대박, 다음은 '짝퉁'과의 전쟁

어떻게 보면 이러한 특허상품 개발 과정이 손쉽게 보일 수 있지만 들여다볼수록 간단치 않은 게 아이디어 사업이다. 강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아이디어만 좋다고 믿으면 집까지 담보받아 올인하는데 이럴 경우 시장반응이 즉각 오지 않으면 마케팅도 제대로 못해보고 사장되기 일쑤"라고 조언했다. 시장성ㆍ경쟁성 등 철저한 준비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최근엔 '짝퉁'과의 전쟁으로 겪는 고통도 크다. 강 대표는 "요즘엔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한 달만 있으면 짝퉁이 판을 친다"고 혀를 찼다.

2006년 한 해에만 1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던 에스보드는 중국판 짝퉁이 판치면서 지난해 매출이 20억원대로 급감했다. 그나마 미국이나 유럽 등지의 인기로 100억원대의 외화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이또한 상당 부분이 특허 관련 소송 비용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강 대표는 "처음에는 특허만 내면 다 보호가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사업자가 모조품을 일일이 찾아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기 때문에 한 해의 1/3을 경찰서와 법원을 오가며 보내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특허 상품은 잘 되면 '짝퉁' 상품 때문에 애를 먹고 안 되면 안돼서 고민인 게 안타까운 현실이죠."

강 대표는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아이디어 산업은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중요한 부가가치 산업"이라며 "선진국처럼 강화된 보호방안이 다각적으로 모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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