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신구 제조업도 전염

머니투데이 유일한 기자 2008.04.09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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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세계적인 럭셔리 오디오 제조업체인 뱅앤올룹슨은 8일(현지시간) 3분기 순이익이 78% 감소했다고 밝혔다. 경기 둔화로 고급 전자제품 소비가 줄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분기 순이익은 2620만 크로나(550만달러, 주당 2.3 크로나)였다. 전문가 예상치는 4280만 크로나였다. 전문가 예상치에도 크게 미치지 못한 것이다. 매출도 15% 줄어든 10억4000만 크로나였다. 예상치는 11억2000만크로나였다. 전형적인 실적 침체가 나타난 것이다.



유럽과 미국이 서브프라임 사태에 막혀 성장이 정체되고 인플레이션은 상승함에 따라 실질 소득이 감소해 구매력이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증시 하락까지 더해져 소비자들의 자신감은 어느 때보다 약화된 상황이다.

이에따라 웬만한 경기둔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던 고급 소비제품 시장까지 타격을 입고 있다.



뱅앤올룹슨은 "4분기가 시작됐지만 판매 여건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며 "모든 서부 유럽시장은 3분기에 있었던 '전복' 여파로 계속 고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소수의 부자나 매니아들이 애용하는 고급 오디오 기기를 생산하는 이회사의 실적 악화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바로 서브프라임 충격이 은행을 넘어 제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증거로서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부자들까지 지갑을 열지않는다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고가 자동차 브랜드인 포르셰도 지난달 미국시장 판매가 24%나 줄었다고 고백했다.

제조업 경기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1분기 실적 발표를 전후로 은행뿐 아니라 반도체 알루미늄 등 전 제조업 분야에서 실적 쇼크가 잇따르고 있는 것.


우선 반도체를 비롯한 기술주들의 실적 동향이 심상치 않다. 약달러에 힘입어 기술주를 비롯한 미국 수출주들은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위 비메모리 업체인 AMD는 1분기 매출액이 15% 줄어든 15억달러에 그쳤을 것이라며 이에따라 1650명을 감원한다고 밝혔다. 7% 감소할 것이라는 예상을 크게 하회한 것이다.



비엔나에 있는 콘스탄티아 프라이빗뱅크의 주에르겐 루카서 펀드매니저는 "반도체 기업들은 경기 성장에 매우 민감하다"며 "AMD의 소식은 경기가 전반적으로 잘 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독일의 메모리업체인 인피니온도 이날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크레디스위스(CS)는 "인피니온은 미국 달러화 약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달러/유로 환율이 1.55달러선을 넘는 이상 회사측이 제시하는 10%의 마진율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서브프라임 사태에 따른 달러화 약세가 대서양 건너 유럽의 반도체 기업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판명된 것이다. CS는 인피니온의 목표가는 40% 낮은 5유로로 제시했다. 투자의견은 '비중확대'에서 '중립'으로 낮췄다.

일본의 메모리업체인 엘피다 주가는 전날 도쿄 증시에서 상장후 최대폭인 10% 하락했다. 20%의 가격 인상을 추진하며 주목받았지만 여의치 않은 것으로 나타나자 몰매를 맞은 것이다.



미즈호자산운용의 이와모토 세이이치로 펀드매니저는 "미국 주택시장 붕괴로 경기둔화가 예상되고 이에따라 새 컴퓨터 수요도 줄어들고 있다"며 "메모리 관련 기업들의 이익도 적어도 내년까지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 최대의 D램 현물시장인 D램익스체인지 테크놀로지에 따르면 메모리 제조업체들은 이번달 가격 인상에 사실상 실패했다. 수요가 빈약한 상황에서 가격 인상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서브프라임 영향권에 직접 노출된 것이다.

첨단 기업뿐 아니라 굴뚝 기업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 3위 알루미늄 제조업체인 알코아는 상품 가격 랠리로 실적이 개선됐을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렸다. 올해 1분기 순익이 전년 동기의 6억6200만달러(주당 75센트)에서 3억300만달러(주당 37센트)로 50% 이상 급감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는 애널리스트 예상치 45~50센트를 밑도는 수준이다. 유가 급등에 원재료로 쓰이는 알루미나 가격이 급등하자 예상밖의 부진을 기록한 것이다.



기업 실적 악화는 서브프라임이 실물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다. 전문가들은 이에따라 '최악이 지났다'는 선언은 이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산업 붕괴에 이어 제조업 역시 적지않은 타격이 불가피하고 이는 미국 경제에 더 많은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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