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건보당국의 이상한 셈법

머니투데이 김명룡 기자 2008.04.04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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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건보당국의 이상한 셈법


“이 약이 사용되면 1년 건강보험료는 줄어든다. 하지만 환자의 기대수명이 1년 더 늘어나기 때문에 결국 건강보험료의 부담이 불가피하다.”

지난달 한 필수의약품의 약가를 결정하기 위해 열린 회의석상에서 나온 말이다. 이 약이 기존 약보다 싸기 때문에 시판될 경우 건보재정 절감효과가 있지만 환자들의 수명을 연장하기 때문에 오히려 재정에 부담이 되는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이상한 논리고, 이상한 셈법이 아닐 수 없다. 기존 약에 비해 싸고, 환자들을 1년 더 살릴 수 있는 유용성이 있다면 그야말로 '신약'으로서 인정받는 게 당연하다. 더구나 효과가 좋은 신약은 일반적으로 기존 약제보다 높은 가격을 받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다국적 제약사측의 재정절감 주장을 반박하고, 약값을 어떻게든 깎아보려는 보건당국의 대응논리였던 점은 인정된다.



그럼에도 믿어지지 않는 것은 이 회의에 참석한 14명의 위원중 한명도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자리에는 복지부 팀장, 건보공단 임원, 건보심사평가원 임원, 식약청 팀장 등 관련 당국자들이 참석했다. 의협, 병원협회, 약사회, 제약협회 임원 등 민간전문가, 제약사와 시민단체 대표도 있었다.

이들 위원들이 이 논리에 동조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단 한명도, 단 한마디의 이의도 제기되지 않았다는 점은 조정위원으로서의 자격을 의심케하는 대목으로 보여진다.

이날 회의는 약가적정화 시행후 첫번째로 열린 약제급여조정위원회였다. 필수의약품으로 지정된 백혈병치료제가 건보공단과의 약가협상 결렬로 팔리지못하고 있어 약가를 조정하기 위해 열린 회의였다. 필수의약품의 약가협상이 결렬되면 조정위가 60일이내에 직권등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규정된 시한을 며칠 앞두고 열린 회의에서 위원들은 양측의 기본입장만 확인하고 회의를 마쳤다. 이후 3주가 지나고 있지만 아직 회의 날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시한 규정이 훈시규정으로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해명이 뒤따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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