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이 '노후 아랫목' 될까?

머니위크 배현정 기자 2008.04.1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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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스토리]불안한 퇴직금 미덥잖은 국민연금

“건강검진을 받았다. 100살까지도 거뜬하게 산다고 한다. 하지만 내일 모레가 은퇴다. 이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한 보험사 광고 속 얘기다. 요즘 노후를 걱정하는 현대인의 복잡한 심경을 잘 대변한다. 정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현실이다. 돈이 곧 '효자'인 시대가 된 것은 삼척동자도 알지만 노후를 대비한 은퇴자금을 두둑히 준비해 둘 만큼 경제적 여유를 가지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은퇴 시 받을 퇴직금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경제전문가들은 "현행의 퇴직금제도의 보장 기능에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고령화시대에 대비한 보다 확실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005년 12월, 퇴직연금의 도입은 그러한 시대적 요구에서 시작됐다.



◆당신의 퇴직금은 안전한가요?

우리나라 국민 2명 중 1명(48.6%)은 노후에 대비가 없다(통계청 2002). 저출산이 보편화되면서 자녀의 부양을 받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퇴직 연령은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마땅히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길어진 노후를 길게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먼저 우리가 노후대비하면 떠올리는 국민연금은 그야말로 기본 중 기본이다. 겨우 기초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을 통해 기초를 쌓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통해 안정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기존의 퇴직금은 중간정산이 가능해 노후가 되기 전에 써버리는 경우가 허다하고 기업이 도산하면 근로자는 일자리를 잃고 퇴직금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직장인이 퇴직연금에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퇴직연금제도는 믿을만한 금융기관에 맡겨서 퇴직급여 체불을 방지할 수 있고 연금을 받아 근로자의 안정적인 노후재원 활용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홍영기 금융감독원 복합금융감독실 수석조사역은 "퇴직연금은 기초생활 보장 이상의 노후 생활을 담보할 수 있는 연금 소득을 제공하면서 우리나라 연금제도의 중심축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퇴직연금이 '노후 아랫목' 될까?


◆도입 2년만에 가입 50만명 돌파

"도입 2년여만에 가입자가 50만 명을 돌파한 것은 우리사회에서 퇴직연금제도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의미로 고령화시대를 대비한다는 측면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장의성 노동부 근로기준국장은 지난 1월 퇴직연금 가입자가 50만명을 돌파한 것을 기념하여 당시 이렇게 말했다. 제도 도입 2년 만에 이룬 성과다.

갈수록 퇴직연금 가입자 증가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월말 기준 가입자 수는 58만2773명, 적립금액은 2조9179억원에 달한다.

특히 도입 초기에는 가입 사업장이 주로 1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 중심이었으나 최근에는 300인 이상 사업장의 도입 비율이 소폭이나마 늘고 있다. 2006년과 2007년 기업규모별 퇴직연금 도입 증가비율을 보면 10~29인 사업장의 경우는 2006년 2.2%에서 2007년 4.7%로 2.5%포인트 증가했으나 500인 이상 사업장은 6.0%에서 16.0%로 10%포인트 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야말로 '걸음마' 단계다. 업계는 향후 10년 안에 100조원대의 '황금 시장'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전문가들은 2010~2011년 경 퇴직연금제도의 본격 도입이 가시화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2010년 말에는 기존 퇴직금에 대한 손비 인정 범위가 대폭 축소될 예정이어서 기업들의 관심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떠오르는 블루오션을 두고 각 금융기관들의 각축전이 심화되고 있다. 보험, 증권, 은행 등 금융업계가 모두 퇴직연금에 큰 공을 들인다.

현재까지 시장의 주도권은 보험업계가 쥐고 있다. 퇴직보험 운용의 경험과 노하우에서 인정 받은 결과다. 지난해 말 금융권별 퇴직연금 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보험 50%, 은행 41%, 증권 9% 등으로 보험사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퇴직연금이 '노후 아랫목' 될까?
◆각 금융사 시장 선점 '총력전'

보험업계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사업자는 삼성생명이다. 전체 보험업계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전체 시장을 놓고봐도 31%의 압도적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대기업과 공기업으로부터의 선호도가 특히 높다. 근로자 500인 이상 도입 기업 142곳 중 48곳(34%), 퇴직연금 도입 공공기관 49곳 중 13곳(27%)이 삼성생명을 선택했다. 삼성생명은 안정적인 재무구조와 전문성, 고객 요구에 대한 맞춤 서비스 등이 독주의 비결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이르다. 퇴직연금시장에 대한 각 업계의 구애가 뜨거워지면서 판도도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은행권에서 퇴직연금시장의 잠재력을 의식해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도입 초기 2배 가까웠던 보험사와 은행의 점유율 격차는 최근 10%포인트 이내로 줄어들었다.

국민은행 한 관계자는 "퇴직연금시장을 선점하고자 전체적으로 본부 인력을 감축하는 분위기속에서도 퇴직연금사업부를 독립시키고 추가 인력을 투입했다"며 "앞으로 국내 최대 은행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우대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재설 우리은행 부부장도 "은행 네트워크를 활용한 복합거래의 장점을 살려 경쟁력을 높여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증권업계도 특유의 추진력으로 퇴직연금시장에 달려들고 있다. 특히 미래에셋은 연초 신년사를 통해 퇴직연금 사업의 전사적 추진을 밝히기도 했다. 미래에셋은 퇴직연금을 도입한 9개 정부투자기관의 DB형 사업자에서 60% 이상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한다.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관계자는 "퇴직연금사업은 근로자가 퇴직금을 단순히 금융기관에 맡겨뒀다가 은퇴 후 찾아쓰는 개념이 아니라 합리적인 자산배분과 적절한 운용으로 퇴직자산을 불려 나가야 하는 개념"이라며 "그간의 자산배분 능력을 퇴직연금 분야에서도 발휘해 고객들의 사랑을 모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근로자-기업 인식 부족, 아직은 '절반의 성공'

퇴직연금 사업자마다 인기몰이 전략도 제각각이다. 보험은 안정성을 상대적으로 더 강조하는 반면 증권사는 수익률에 대한 높은 기대를 내세우고 있다. 제도에 대한 선호도에서는 확정급여형(DB)의 우세가 두드러진다. 지난 2월말 기준 제도 유형별 적립금 규모를 보면 DB형은 전체 퇴직연금제도 중 65%로 시장 점유도가 크다. 반면 확정기여형(DC형)은 28%, 개인퇴직계좌(IRA)는 7%에 그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나치게 원리금보장형 상품에만 가입이 편중되는 것은 다양한 퇴직연금 상품의 개발을 저해해 퇴직연금시장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퇴직연금시장에 대한 구애로 몸이 후끈 달은 퇴직연금 사업자들과는 달리 아직은 '무관심'이 대세인 기업과 근로자의 마음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도 앞으로 퇴직연금 활성화를 위해 풀어야 할 숙제다. 연금컨설팅업체인 한국왓슨와이어트가 국내 193개사를 대상으로 퇴직연금 도입 및 문제점을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의 48%가 퇴직연금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일정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정부는 퇴직연금제도 활성화를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지난 2월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에서 의결한 '퇴직연금 감독규정 및 시행세칙 개정안'에선 DB형 퇴직연금은 적립금의 최대 50%까지 주식형펀드에 투자할 수 있게 되고 부동산 및 실물펀드에 대한 투자도 가능해지는 등 적립금 운영의 자율성 확대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도입 2년의 성적표는 '절반의 성공'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국개발연구원은 "2년전 도입된 퇴직연금제도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을 보조하는 기능을 해야하는 데도 근로자와 기업의 인식 부족과 퇴직연금 전환대책 미흡 등에 따라 실적이 저조하다"고 질타하며 "중장기적으로 호주처럼 현행 법정 퇴직금을 완전히 퇴직연금제도로 전환토록 의무화하는 방안 등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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