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답답하고 갈 길은 바쁘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각박해진 인심과 조급증이 길거리에 가득하다. 무리한 새치기를 막으려는 정의감의 발로일 수도 있다. 양보해줬다고 손을 흔들어 감사를 표시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차선변경을 가로막는 것이 내가 빨리 가는데 유리한 방법일까? 내 앞에 차가 한 대라도 적어야 빨리 갈 수 있다는 듯이 운전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러다가 대한민국 초보운전자는 한없이 직진만 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순환 고리를 생각하지 않으면 많은 일이 애초 의도와는 반대로 귀결된다. 크고 작은 사례가 부지기수이다. 뉴욕에서 마약을 소탕하기 위해 대규모 밀매조직을 검거하였을 때 마약가격이 폭등하는 바람에 마약 밀매자가 오히려 증가한 적이 있다. 특정지역에서 성매매를 금지하면 성매매가 일반 주택가까지 침투한다.
교차로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신호등을 설치하는 방법과 로터리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 신호등은 일종의 규제역할을 하는데 차량 소통량에 따라 가변적으로 통제되지 않는다. 로터리는 일견 위험해 보이지만 매우 가변적으로 교통흐름을 제어한다. 단 한 가지 지켜야 할 아주 단순한 조건이 있다. 나의 진행방향 반대편에서 먼저 로터리에 진입한 차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굳이 신호등을 매달고 전기를 쓸 일도 없이 이 규칙만 잘 지키면 안전하고 빠르게 교차로를 통과할 수 있다. 오가는 차도 없는데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무작정 서 있을 일도 없다.
양보가 미덕이라고 다들 알고 있다. 정작 문제는 ‘알고 있는 지식’과 ‘실제 행동에 적용하는 지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남의 일에 관해서는 정답을 잘 훈수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지행합일이 안 되는 것이 늘 문제이다. 한 번 더 도약하려고 빠르고 가파르게 직진하는 지금, 복잡한 순환의 법칙과 양보가 가져오는 순기능을 한 번 더 살펴볼 일이다. 역사는 길고 기업도 사람도 오래 번영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