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목수가 꿈이었지만, 못 하나 박는 것도 서투른 왼손잡이인-연장사용을 빼고는 대부분 오른손잡이다- 나는 강남의 사무실을 둔 설계사를 소개받아 설계와 앞으로 진행될 집지을 동안의 공사 감리를 맡기기로 계약하였다. 2003년 11월 시작된 도면작업은 2004년 5월23일 조촐한 개토식을 시작으로 마무리되었다.
실제로 우리집에서 가장 큰 창이 두 개나 동향과 남향으로 각기 배치되었고 좀 대형인 와인냉장고로 인한 공간부족으로 이때까지 김치냉장고도 하나 없는 불우이웃 상태도 충분히 해소되었다. 2층은 필자의 평생소원이었던 서재 설치가 작지만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어찌되었건 재벌급 인사를 제하고는 아마 국내 최초로 지하셀러를 가진 사나이가 되었다고 착각하며 살기로 하였다. 2004년 10월31일 양지면민이 된 이후 2년 동안 지하셀러의 온도와 습도를 측정한 결과 두 가지 문제점이 도출되었다. 사면이 모두 땅속이 아닌 셀러인 관계로 여름과 겨울의 온도변화(10~20도)와 습도변화(30~90%)는 적정온도 15도 내외와 적정습도 50~70% 정도에서 상당히 이탈한 수치를 보였다. 기계적으로 적정한 보관 상태를 유지하려면 의외로 많은 비용지출을 감수해야만 한다.
나는 여름에는 제습기를 주기적으로 가동하고 겨울철 낮은 습도를 높이기 위해 고민하다가 남대문시장에서 장난감 같은 조그만 물레방아로 습도문제를 거뜬히 해결하였다. 온도의 변화는 그대로 두기로 했다. 자연의 산물인 와인을 적당하고 점진적인 변화에 노출시키는 것이 더욱 자연스런 보관방법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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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으로 나의 와인창고 짓기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앞으로 단독주택을 지을 계획이 있는 사람은 꼭 와인을 위한 지하창고를 염두에 두기 바란다. 다만 격렬한 반대로 어려움에 빠지지 말고 미리 가족들에게 좋은 와인을 수시로 권해 아군으로 회유하는 전략구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집시 에스메랄다를 잡으러 노트르담성당으로 진입하려는 병사들에게 종지기 콰지모도는 "성역이다" 외치며 그들을 가로 막는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세상, 즉 성역이 필요하지 않을까? 9.9㎡짜리 성역을 가진 나는 그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때때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