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완화, 기업 지배구조 변화오나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2008.03.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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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은행 금융지주회사가 일반 제조업체 등 비금융회사를 지회사로 둘 수 있도록' 하는 방침을 금융위원회가 31일 청와대에 보고했으나, 재계에서는 사안마다 영향이 다른데다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은행이 아닌 보험이나 증권, 카드 등 비은행권 금융회사가 제조업을 자회사로 둘 수 있는 길이 열린 점은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그동안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금융회사가 제조업 자회사에 대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지 못하고, 의결권도 제한받아왔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로 금융지주회사들이 제조업 자회사에 대해 더 폭넓은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현행 순수 지주회사 체제를 유지할 경우 그 혜택을 볼 수 있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게 재계의 목소리다.

◇기업 규모에 따라 영향은 천차만별=우선 현행대로 지주회사를 설립하려고 할 경우 동부그룹 등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지 않은 기업들의 경우 비은행금융지주회사를 통해 제조업체들을 자회사로 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삼성그룹과 같은 경우 막대한 지분 인수를 위한 자금이 필요해 현실적으로 지주회사로의 전환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지주회사의 성격은 순수 지주회사로, 순환출자나 상호출자가 인정되지 않고 지주회사가 수평적으로 자회사의 지분을 보유해야 한다. 지주회사가 되려면 상장회사인 자회사의 지분은 20%, 비상장 회사의 지분은 40%를 확보해야 하는 데 덩치가 큰 그룹의 경우 막대한 현금을 투입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동부 그룹은 혜택=동부그룹은 지난 2003년 7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동부화재 (111,300원 ▲2,500 +2.30%)(8.07%)와 동부생명(1.45%)이 보유하고 있던 아남반도체(현 동부하이텍 (40,750원 ▲300 +0.74%)) 지분 9.52% 가운데 5%를 초과하는 지분 4.52%를 매각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금융산업지배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금산법)에 따라 금융회사가 비금융회사의 지분을 5% 초과 보유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동부그룹은 이같은 금감원의 조치에 따라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동부하이텍 지분을 매각했다.


하지만 이날 금융위가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밝힌 것처럼 금산법이 완화될 경우 이같은 문제는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동부화재가 동부건설 (4,240원 ▼30 -0.70%)(28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 3464억원) 지분 13.73%, 동부제강 (6,500원 ▼110 -1.66%)(시가총액 2865억원) 6.41%를 보유하고 있다.

상장 자회사 지분을 20%까지 늘려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두기 위해서는 각각 6.27%(217억원)와 13.59%(389억원)를 추가로 늘리면 가능하다. 약 600억원이면 동부화재가 금융지주회사로서 동부건설과 동부제강을 자회사로 둘 수 있다. 또 동부생명도 동부건설의 지분 9.46%를 갖고 있는데 이도 금산법 완화조치가 이루어질 경우 지난 2003년과 같은 제재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 그룹은 영향 미미=현행 금산법에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60,600원 ▼700 -1.14%) 지분 7.21% 중 2.21%의 의결권이 2009년부터 제한된다. 또 금융회사인 삼성카드 (41,000원 ▲550 +1.36%)가 보유한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4% 중 20.64%를 2007년부터 5년 내에 자발적으로 해소해야 한다.

하지만 비은행금융회사의 비금융업(제조업 포함) 지배가 가능토록 할 경우 이같은 의결권 제한이나 지분 해소의 문제는 사라진다.

다만 금융위가 내놓은 전제조건이 순환출자나 상호출자를 해소하는 것인 점을 감안할 때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동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회사로서 삼성전자를 자회사로 두기 위해서는 상호출자를 해소하고, 현재 7.21% 지분을 20%까지 늘려야 한다. 12.79%의 지분을 추가 취득해야 한다는 소리다.

삼성전자의 지난 3월 28일 종가를 기준으로 시가총액이 90조 2944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12.79%를 취득하는데만 11조 5486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다른 계열사까지 포함하면 수십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얘기여서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재계의 목소리다.

현재 삼성 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삼성에버랜드 지분 25.1%를 보유하고 있고,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지분 13.34%,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 7.21%, 삼성전자가 삼성카드 지분 37.32%,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4%를 보유한 순환출자구조다.



이같은 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그동안 상호출자를 해소하고 금융지주회사가 각 계열사의 지분을 추가 매입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이는 지배구조의 변화와는 별개의 문제로 쉽지 않은 대목이다. 따라서 이번 금산법 완화조치에도 불구하고 일부 상호출자를 인정하는 형태의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삼성그룹과 같은 덩치 큰 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의 길은 쉽게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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