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재벌 더 풀어라"..버티는 공정위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송선옥 기자 2008.03.2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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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는 나름대로 푼다고 풀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본 것 같다. 대기업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채무보증을 금지하는 제도를 놓고서다.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되는 마당에 사실상의 마지막 '재벌 규제'다.

이 대통령은 추가 완화 또는 폐지를 요구했지만 공정위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적어도 30대 그룹에는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채무보증을 묶어둬야 한다는 게 공정위의 소신이다.



이 대통령은 28일 공정위 업무보고에서 "지금도 공정위는 출총제를 폐지하고 시장공시제도를 쓴다고 하면서도 상호출자 제한제도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라며 "적극적인 사고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모순이 생기면 대책을 세우더라도 너무 소극적으로 해서는 안된다"고도 했다. 보다 전향적인 수준의 완화를 주문한 것이다.



이날 공정위가 내놓은 방안은 상호출자 금지 대상 그룹의 자산 기준을 지금의 2조원에서 상향조정하는 것이었다. 새 기준으로는 '5조원 이상'을 예로 들었다.

만약 5조원으로 조정되면 농심 태평양 한국타이어 오리온 등 20개 그룹이 대해 상호출자 금지 규제에서 풀려난다. 이 경우 계열사 간 상호출자가 금지되는 그룹은 지난 3일 기준으로 61개에서 41개로 줄어든다.

대상에서 제외되는 그룹들에게는 그동안 금지돼 온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채무보증이 원칙적으로 허용된다. 물론 지분을 50% 이상 가진 자회사에 대해서는 상법에 따라 앞으로도 상호출자를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 완화 방안이 기대에 못 미쳤다는 반응이다. 그럴 만도 하다. 올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한때 상호출자 금지 규제를 아예 폐지하는 방안까지 거론됐다. 당시 "요즘 시대에 '재벌'이라는 구분이 맞느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공정위가 완화를 주저하는 데 대해 이 대통령은 나름대로 해석을 내렸다. 이 대통령은 "그 동안 대기업 규제를 없애지 못한 것은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 프렌들리'라는 비판이 두려워 정책을 소극적으로 하면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들은 뒤에도 공정위는 물러서지 않았다. 서동원 공정위 부위원장은 업무보고 후 브리핑에서 "지난 2002년 민간 30대 그룹에 공기업들을 포함시켜 42개 그룹을 상호출자 금지 대상으로 지정했다"며 "지금도 민간 30대 그룹은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부터 현대산업개발까지 민간 30대 그룹을 상호출자 금지 대상으로 남겨두는 방안이 기준을 5조원으로 높이는 것이다. 기준을 더 높이면 대상이 되는 민간 그룹이 30개 미만으로 줄어든다. 공정위는 5조원을 '마지노선'으로 생각하는 셈이다. 규제를 더 풀 경우 대기업으로의 경제력 집중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공정위의 소신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재벌 규제' 추가 완화를 밀어붙일 경우 공정위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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