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피아가 아니라니까"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03.2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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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한 경제-카스테라]

요즘 기획재정부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모피아'(옛 재무부 관료집단을 마피아에 빗댄 말)다.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제발 더 이상 '모피아'란 말 좀 쓰지 말아달라"고 한다. "나는 '모피아'가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모피아란 재무부의 영어 약자인 ‘모프(MOF)’와 ‘마피아(Mafia)’의 합성어. 과거 산하 금융기관에 무수한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고 심지어 연임까지 시키던 시절 '재무부 이재국' 관료들을 두고 하던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재무부도 이재국도 없고 이재국의 후신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마저 금융위원회로 떨어져 나갔다. 무수했던 산하 금융기관들은 수출입은행 등 4곳만 남고 모조리 금융위 소관으로 넘어갔다.

또 금융위원장과 금융위 부위원장 자리에는 민간 출신이 앉았다. 예전처럼 관료들끼리 ‘묻지마'식 낙하산 인사를 하기는 불가능하다. 참여정부 이후로는 옛 재무부 출신이 공공기관 사장을 연임하는 경우도 거의 사라졌다.



특히 경제기획원, 기획예산처에 있다 통합된 재정부로 소속이 바뀐 이들 입장에서는 '모피아'라고 도매금으로 취급당하는 게 억울할 만도 하다.

하지만 재정부 사람들의 희망과는 달리 '모피아'란 단어는 최근들어 더욱 자주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무회의에서 "전화를 걸어 '이 사람들 좀 써달라'고 부탁하고, 제발 그런 나쁜 일 좀 하지 말자"며 "그러니까 '모피아'라는 말을 듣는다"고 했다. '모피아'에 대한 이 대통령의 반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발언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는 이유가 있다. 재정부가 무보직 국장급들을 위해 7개의 태스크포스(TF)를 만든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여기에 재정부는 일부 국장급 인사들을 통계청 등 외청 차장으로 내려보내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산하 금융기관이 줄어들자 외청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이 대통령도 이런 상황을 보고 받았다. '모피아'의 또 다른 구습(舊習)으로 비쳐질만했다. 대통령의 발언 직후 TF는 모두 해체됐고 외청에 대한 인사 입김도 중단됐다. '모피아'란 말이 싫다는 재정부로서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사실 '모피아'는 오랜 딜레마다. 관료들의 논리는 이렇다. "능력있고 경험있는 관료들이 외부에서 활동하는 게 국익에 도움되는 것 아니냐", "금융정책은 금융기관장과의 교감이 중요한데 관료 출신이 기관장으로 있는 게 더 효과적이다".



반대로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기관장이 될 수 없다면 산하기관 직원들은 무슨 희망으로 일을 하느냐"는 논리도 있다. 이 대통령과 대부분의 민간인들은 후자의 얘기가 맞다고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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