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2.0]암소 두 마리와 기업 부정

손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2008.03.2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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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2.0]암소 두 마리와 기업 부정


암소 2마리를 이용해 인류가 겪어온 경제체제의 역사를 서술해 보겠습니다. 당신이 암소 2마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봉건주의에서는 지주가 당신의 암소에게서 생산되는 우유를 가져갑니다. 파시즘에서는 정부가 암소를 탈취하고 당신을 고용해서 암소를 키워 당신에게 우유를 팝니다.

공산주의에서는 당신의 이웃과 함께 암소를 키우고 우유를 나눠 갖습니다. 전체주의에서 정부는 암소를 탈취하고 그 사실을 부인하면서 당신을 군대에 보내고 우유의 유통을 금지합니다. 자본주의에서 당신은 암소 1마리를 팔아서 수소를 사고 송아지를 키워 재산을 불리고 은퇴하여 그 재산으로 여생을 보냅니다.



21세기 들어 자본주의보다 진일보한 경제체제가 탄생했습니다. 엔론이라는 회사가 고안한 새로운 형태의 '모험자본주의'입니다. 역시 암소 2마리로 시작합니다. 당신은 친척의 은행에서 개설한 신용장으로 당신 소유의 상장회사에 암소 3마리를 팝니다. 대출금의 출자전환을 통해 4마리를 돌려받고 5번째 암소에 대해서는 면세 혜택을 받습니다.

암소 6마리에 대한 우유판매권이 당신이 소유한 유령회사에 기부되고 이 회사는 다시 당신에게 암소 7마리의 우유판매권을 팝니다. 당신은 연차보고서에 8마리의 암소를 보유한 것으로 발표하고 9번째 암소에 대한 옵션 행사권을 부외거래로 표시합니다. 알 듯 모를 듯 암소 2마리가 9마리로 둔갑했습니다, 수소도 없이. 놀라운 생산력입니다.



이 이야기는 2001년 파산 선고된 엔론의 부정한 방법이 세상에 드러난 후 월가에서 e메일 등을 통해 회자된 풍자적인 글입니다. 이후 월드콤, 타이코, 아서앤더슨, 메릴린치 등 일련의 기업 스캔들이 이어졌고, 우리나라도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기업 부정에는 특별한 사전 징후가 있을까요. 미국 회사를 대상으로 한 분석결과가 학술지에 실렸습니다(Jensen 등 공저, Climate for scandal, 2007).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는 회사, 발표되는 수익규모가 꾸준히 유지되는 회사, 외부 감사위원의 수가 적은 회사, 사외이사의 급여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회사가 회계부정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소위 잘 나가는 회사, 소수 외부 임원에게 많은 금전적 보상을 하는 회사를 유심히 봐야 한다는 얘깁니다.

또 다른 논문(Zingales 등 공저, Who blows the whistle in corporate fraud? 2007)에서는 누가 기업 부정을 잘 적발하는지를 분석했습니다. 놀랍게도 감독기관이나 주주보다는 내부 임직원, 증권사 애널리스트, 언론의 적발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애널리스트는 기업 부정을 평균 395일 만에 밝혀냈습니다.
 
기업 감시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나 주주의 소송제도가 잘 되어 있다는 미국에서조차 이들 공적 기관이나 제도보다 내부인, 증권시장, 언론 등 사적 부문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 새롭습니다. 이러한 사적 부문의 기업 감시 기능은 기업의 부정과 잘못된 관행에 대한 국민의 높은 의식수준과 함께 강화될 것입니다.


막바지에 접어든 삼성에 대한 특검 수사와 이후 재판 결과가 궁금해집니다. 내부인의 폭로 동기는 관심 대상이 아닙니다. 이 사건의 결과를 통해 기업 부정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을 간접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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