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량' 가면 쓴 '짝퉁신약'

머니투데이 이기형 기자, 김명룡 기자 2008.03.26 08:42
글자크기

개량신약 다시보자<상>

'개량' 가면 쓴 '짝퉁신약'


"
개량신약은 독성시험과 임상시험을 거쳐 오리지널 약의 구조를 변경한 약품이다. 단순히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생동성)을 거친 복제약(제네릭)보다 낮은 가격을 받을 수 없다."

지난주 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 개량신약 보험등재를 신청했다 떨어진 한 개량신약 개발업체의 하소연이다. 업체측은 "우리나라에서 개량신약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폄하되는 것이 우려스럽다며 다시 신청하더라도 같은 가격을 고수하는 등 물러서지 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이다.



이 업체는 국내 제약사중 개량신약 매출이 가장 높은 제약사다. 이 업체는 지난주 항혈전치료제 '플라빅스'의 개량신약의 보험등재를 신청하면서 오리지널 약가의 80% 수준으로 희망약가를 제시했다. 다른 제약사가 플라빅스 개량신약의 약가를 오리지널의 75%수준으로 제시했다가 떨어진 사례를 감안해볼 때 일종의 항의표시로 해석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이번 평가위에서 오리지널 약가의 68% 수준에서 희망가를 제시한 제약사는 건보로 부터 약값을 받는 `급여' 약제 판정을 받았다. 건보심평원에 따르면 현재 시판되고 있는 플라빅스와 제네릭 제품과의 가중평균가격보다 이들 제약사가 제시한 가격이 낮아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관련규정에 근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플라빅스 개량신약 등재여부를 지켜보면서 이른바 '개량신약'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제네릭 제품이 이미 수십여개나 시판된 상황에서 약효개선 효과가 없음에도 불구 개량신약이라고 해서 무조건 제네릭보다 높은 약가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문제 제기다. 이 문제는 개량신약 전반에 대한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우선 개량신약은 용어 자체가 주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개량신약이라는 말은 정식 용어가 아니다. 굳이 개량신약의 법적용어를 찾는다면 '자료제출의약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제네릭은 생동성 시험만 거치면 되지만 오리지널 약의 성분을 변형시킨 의약품은 독성과 임상시험 자료를 식약청에 제출해야 약품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이 의약품이 바로 `자료제출의약품'이다.

그렇다면 모든 자료제출의약품은 진정한 의미의 개량신약일까. 그렇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안소영 국제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본래 개량신약은 기본적으로 오리지널약물의 분자구조를 바꿔 약의 효과를 개선시키는 수준의 약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름하여 신약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약효개선 효과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국내 개량신약은 약효개선 효과 없이 특허를 피해가기 위한 전략으로 사용되는 측면이 강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단순히 부가 염을 바꿔 화학구조를 바꾸는 데 그친다는 것. 이번 플라빅스 개량신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번 경우에는 제네릭이 이미 시판되고 있기 때문에 특허를 피해간다는 취지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안 변리사는 "화학구조를 바꿀 경우에는 기존 약물의 효능을 확실하게 개선시키는 수준에서 개량신약의 범위를 인정하는 것이 맞다”며 "개량신약은 복용을 편하게 하고 약효를 개선하는 약품만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제약사들도 일정부분 인정하는 부분이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의 개량신약은 약효의 ‘개량’ 효과가 미미하다”며 “개량신약보다는 ‘변형’ 신약으로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염을 변경해 특허를 피해갈 경우 약의 발매시점을 앞당길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물질특허가 끝나기전에 개량신약 제품을 발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약 보다 싼 가격에 비슷한 품질의 제품이 판매될 수 있다는 점에서 건강보험 재정에 도움이 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 전문가는 “개량신약의 특허범위를 넓게 인정할 경우 다국적 제약사와 특허권 분쟁의 소지가 있다”며 “분쟁에서 질 경우 제약산업이 후퇴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량' 가면 쓴 '짝퉁신약'
제약사들은 신약기술 축적을 위해 정부당국이 개량신약 약가의 우대해줘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신약기술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일명 '짝퉁' 만드는 수준에 불과하는 것. 염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기존 약물의 화학구조를 약간 변형하는 수준의 기술을 축적하는데 그치기 때문이다. 업계 한 대표는 “핵심인 원천물질과 관련된 연구가 아니라면 신약개발 능력과 큰 연관은 없다”며 “분자구조를 분석하고 이를 응용하는 진짜 개량신약 개발이 이뤄져야 신약개발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제약사들도 단순히 오리지널 약의 성분을 변형하는 것이 아니라 효능을 개량하는 수준의 연구를 진행해야 할 것”이라며 “진정한 의미의 개량신약을 만드는 연구환경이 조성돼야 신약개발을 위한 연구능력도 쌓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진정한 개량신약만이 인정받고 정책적 우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