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개 생필품 발표, 제조업체 이중고에 '한숨'

머니투데이 박희진 기자 2008.03.2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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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규제 없다지만 정부 눈치 안볼수 없는 노릇"…"유통업체 압박에 정부까지"

서민물가안정을 위해 기획재정부가 25일 총 52개 생활필수품을 확정, 발표한 가운데 관련 제조업체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당초보다 2개가 늘어난 52개 품목이 최종 결정됐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 발표되지 않은 만큼, 제조업체들은 후속 조치 등 추후 동향을 살피겠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면서도 대통령까지 사실상 간접적인 가격통제에 나서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경쟁심화, PB(자체브랜드) 강화 등으로 유통업체의 가격압박이 심한 상황에서 정부까지 '가격 컨트롤 타워'를 자처하고 나서자 이중고에 빠진 것. 치솟는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삼중고'다.

업계 관계자는 "원가상승요인을 최대한 우리측에서 흡수하려고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상황이 쉽질 않다"며 "가격을 올려도 시원찮을 판에 (이같은 가격관리에) 속이 탄다"고 하소연했다.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의 위상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가격결정권이 제조업체에서 유통업체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정부발 가격관리 방안발표에 제조업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직접 가격을 규제하지는 않겠다고 밝혔지만 10일 간격으로 가격 조사를 한다는데 가격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냐"며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무척 고민"이라고 밝혔다.

연초부터 '물가잡기'가 신정부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신세계 (154,900원 ▼1,300 -0.83%)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는 일찌감치 다양한 가격할인 정책을 봇물처럼 쏟아냈다.


그러나 유통업체는 자체 마진 인하, 직소싱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가격을 낮췄다고는 하지만 제조업체에 대한 가격 압박도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정부의 52개 품목에 대한 마트의 '가격압박'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이번에 발표된 52개 생활필수품 중 대형마트에 판매되는 품목은 30여개에 달한다.

정부가 집중 관리할 52개 생활필수품이 발표되면서 식품, 생활용품 업계가 신성장 동력으로 주력해온 '프리미엄 전략'에도 급제동이 걸렸다.



'웰빙열풍'을 반영, 더 좋은 원료로 다양한 프리미엄 브랜드를 잇따라 출시했는데 이번 52개 품목에 들어가는 제품은 고가의 프리미엄 마케팅을 펼치는데도 운신의 폭이 좁아질 공산이 커졌다.

가격 역차별 논란도 예상된다. 샴푸만 해도 국내 일반 샴푸와 프랑스제 모근강화 기능 샴푸 가격 차이는 20배가 넘는다. 정부가 일반 샴푸 가격만 관리하면 저가 국내 제품만 가격통제를 받게 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실용정부 기치를 내걸었으면서 가격통제에 나서는 것은 큰 모순"이라며 "정부의 물가통제가 업계의 자율적인 마케팅까지 억누르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대형마트도 아직까지 갈피를 못잡고 있기는 마찬가지. 한 관계자는 "유통업체가 가격할인을 감내할 필요는 없지 않냐"며 "당장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지만 상품본부측과 공조를 통해 이번 사안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신세계는 이날 마치 정부발표를 기다렸다는 듯이 이마트가 27일부터 구매 비중이 높은 생필품 50여개를 선정해 최고 60% 가량 할인된 15년전 가격으로 판매하는 행사를 펼친다는 자료를 언론사 담당기자들에게 이메일로 발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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