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융시장 휘젓는 'Nomad 자금'

유일한 기자, 김경환 기자 2008.03.2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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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펀드-헤지펀드 등 모두 10조 달러 추정

세계 금융시장의 불은 24시간 꺼지지 않는다. 한국 등 아시아시장이 꺼질 무렵 런던시장이 깨고 뉴욕 시장이 또 바톤을 잇는다. 잠든 새에도 돈은 돌고 돈다. 다만 단 한푼이라도 더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시장과 물건을 찾아 떼로 몰린다. 때론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문제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한꺼번에 이동하면서 시장을 휘젓고 이따금 세계 경제에 혼란을 가중시킨다는는 점이다. 그래서 도는 돈은 무섭다. 이른바 '노매드(Nomad. 유목민) 자금'이다.



작년 8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인한 신용경색 이후 돈은 달러, 주식을 피해 다녔다. 대신 금, 원유, 곡물, 원자재, 유로와 엔화 등에 쏠렸다.

경기침체 방어를 위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연이은 금리 인하에도 불구, 침체는 더 심화됐고 인플레이션 위험은 커져만 갔다.



그런데 연준이 작년 이후 여섯 번째 금리인하를 단행한 18일(현지시간) 이후 이같은 흐름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뉴욕 증시가 저점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을 보이고 달러화가 반등한 반면 유가, 금값은 상승세가 두드러지게 맥빠졌다. 일부 상품은 고점에서 주저앉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침체가 여전하고 금융위기 역시 해결을 논하기 이르다며 주식-달러 약세, 금-엔화 강세라는 큰 추세가 바뀌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연준의 지속적인 금리인하로 기준 금리가 2.25%로 낮아져 추가적인 인하 여력이 대거 줄어든 만큼 반전의 시기가 멀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자금 흐름을 결정하는 최대 동력인 미국의 금리와 달러가 언제까지 계속 인하와 약세를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하는 이제 많아야 두 번 남았다.


이미 약삭빠른 헤지펀드 등 일부 큰손들은 금과 엔화, 곡물을 버리고 달러를 사는 식으로 태도를 바꾸고 있다.

◇떠도는 돈 얼마나 되나
전세계 상품 및 금융시장을 오가는 돈의 규모를 추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관련 자산의 규모를 보면 전세계 국부펀드가 3조달러 정도이고 헤지펀드는 1조5000억~2조달러로 추산된다.

여기에 전세계 연기금 자금이나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도 막대하다. 헤지월드닷컴에 따르면 2006년말 전세계 연기금펀드 자산은 26조달러로 일년전에 비해 14% 증가했다. 정확한 파악이 사실상 불가능한 엔캐리 자금도 수조 달러 단위로 추정된다.

수십 조달러 전후의 막대한 자금이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경을 넘어 떠도는 자금은 10조달러 안팎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한번 쏠림이 나타나면 곧바로 버블을 형성하고 엄청난 후유증을 조장하는 역할을 되풀이해왔다.

특히 헤지펀드의 영향력은 명성이 자자하다. 주식에서 콩 나아가 관련 파생상품에 이르기까지 절대수익을 위해 대상을 가리지 않고 게걸스럽게 먹고 내뱉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따금 '핫머니'로 위장해 작은 외환시장을 주물러 수익을 내기도 한다.

헤지펀드수는 95년말 2800개에서 2005년말엔 8500개로 3배 늘었고 운용자산은 970억달러에서 1조1300억달러로 12배 증가했다.

맥킨지 컨설팅에 따르면 2002년 이후 오일달러의 누적 유입액은 글로벌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4%인 약 2조 달러에 이른다.

◇달러와 주가에 대한 관심이 달라졌다
달러가치가 20일 도쿄 외환시장에서도 유로에 대해 비교적 큰 폭 반등하는 등 최저가 행진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이다. 달러/유로 환율이 1.55달러대까지 밀린 것이다. 엔화에 대해서도 반등세로 돌아서며 엔/달러 환율이 99엔선을 회복했다.

뉴욕증시가 19일 2% 넘게 폭락했지만 상품 가격이 조정받으면서 낙폭이 커졌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금융주가 여전히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며 증시 투자자들을 괴롭혔다. 아직 증시가 대안이 되기에 이르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다만 글로벌 뮤추얼 펀드 자금 유출입은 눈길을 끌었다. 최근 몇주간 양호한 자금흐름을 보였던 라틴지역과 상품(Commodity) 섹터에서조차 지난주에는 자금유출이 발생했다. 라틴지역에서는 400억 달러가 빠져나갔고 에너지 섹터에서도 2주 연속 자금이 빠져나갔다.

미국의 경우 금융섹터로만 26억 달러가 유입됐다. 총 순유입자금이 19억 달러였음을 감안하면 금융섹터를 제외하고는 자금이 빠져나갔다. 급락한 금융업종을 사기 위해 국제자금이 이동했다. 상품 가격이 폭등한 것과 달리 글로벌 증시는 올들어 20% 안팎 폭락, 상대적인 가격 매력이 높아졌다. 중화권 증시는 30% 가까이 무너졌다.

◇와타나베 부인의 '봄바람'..비자 IPO
외환시장의 큰손인 '와타나베' 부인들의 봄바람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와타나베 부인은 저금리인 엔화를 팔아 고금리 국가 자산에 투자하는 일본의 주부 투자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투자자산이 워낙 많아 전세계 환율시장 흐름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높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들이 신용경색으로 달러화가 엔화에 대해 22%나 폭락하자 '달러화가 싸다'는 인식이 강화됐고 달러화 매입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신용카드 회사인 비자의 성곡적인 기업공개(IPO)는 유동성이 움직이는 한 경로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신용경색 불안감이 증폭된 국면에서 금융회사가 오히려 179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역사상 최대이고 세계에서 두번째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한 전문가는 "증시에 돈이 마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용경색 위세가 대단하지만 전망이 밝은 기업만 있으면 막대한 자금이 몰릴 것"이라며 "주식을 부정적으로만 대하던 기존의 관성에도 적지않은 변화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전세계 주식시장 담당 전략가인 앤드류 가스웨이트는 "상품 가격이 급등하면 처음에는 경제 성장을 둔화시킨다. 그런데 경기가 꺾이면 머지않아 상품시장은 보복을 당하기 마련"이라며"실질적인 수요가 준다는 게 확인되면 투기세력은 현금을 챙기는데 치중한다"고 말했다. 현금을 챙긴 투기세력은 주가, 달러를 찾아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장기간 급등한 상품시장은 버블 경고를 맞고 연이어 흔들리는 모습이다. 20일 시간외 거래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는 배럴당 102달러를 이탈했다.

4월 인도분 금 가격은 전날 2006년 6월 이후 최대인 5.9% 급락한 후 시간외 거래에서 2% 넘게 급락하며 온스당 920달러마저 위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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