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선의 시장점유율로 공장자동화 센서·제어기기 분야에서 국내 최고기업으로 평가받는 오토닉스의 박환기(56) 사장. 그에게 지난 30년간의 '일벌레'로 살았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 전파사
박 사장은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부산 국제시장에 있는 전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1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네 전파사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
당시 그가 맡았던 업무는 TV 수리. 그 무렵 부산에는 일본에서 밀수로 들어온 중고 TV가 많았다. 처음에는 실력이 달려 진땀을 빼는 일이 허다했다.
"고치기 힘든 제품은 업자들 상대로 수리를 대신 해주는 숙련기술자들에게 넘겼죠. 그때 '1년 뒤에 두고 보자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제품을 뜯어보며 '어떻게 수리 됐나' 몇 번이고 들여다봤습니다. 1년쯤 뒤에는 제 실력이 앞섰죠. TV가 진공관 방식에서 트랜지스터로 바뀌면서는 다른 기술자들이 더욱 따라오질 못하더라고요."
그는 군대 제대한 직후인 1977년 전파사를 직접 창업했다. "손재주가 뛰어나다는 소문이 돌아 제법 큰 돈을 벌었죠. 하지만 받은 일만 하는 것은 답답했습니다. 물론 창업할 때 큰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냥 '이래선 안되겠다'는 의욕만 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막연한 '도전의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 정직
보증금 200만원 사무실에서 직원 한명을 두고 출발한 오토닉스는 박 사장과 임직원들의 노력 속에서 성장해갔다. 창업 30주년을 맞았던 지난해에는 6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글로벌 사업장은 중국 등 6곳이나 된다.
"회사에 압류가 들어오고, 직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죠. 하지만 남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채권자들에게 믿고 도와달라고 설득했습니다. 두어달 지나고 나니 빚 독촉하던 사람들이 오히려 격려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숨지 않고 원칙대로 대처했던 것이 잘한 판단인 것 같습니다."
# 일벌레
힘들었던 지난 일을 잊지 않아서일까. 박 사장은 주말에도 어김없이 출근해 근무한다. 회사에서는 지독한 '일벌레'로 통한다. 이 정도 열정이다 보니 회사에서 생산하는 5000여개의 제품을 모조리 숙지하고 있어 직원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출근 후 사무실에 머무는 시간은 10여분.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낼 정도로 제품 개발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박 사장은 중견기업의 최고경영자(CEO)임에도 골프를 치지 않는다. 골프가 중년들 건강유지에 좋고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모이면 골프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하지만 기업활동이 힘든 상황에서 오너가 더욱 노력해야 기업이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