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무차별 폭락 "투기 거품 꺼지나"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08.03.20 07:45
글자크기

상품가 2월29일 정점 하락세 가속

상품(원자재) 가격 거품이 드디어 터지는 것일까.

그동안 상품 가격은 이머징 마켓 등 전세계 국가들의 경제 성장 호조와 맞물려 상승세를 지속해왔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전문가들은 상품 가격 상승세를 수급 불일치라는 펀더멘털 요인에 따른 자연스런 상승세로 봤다.

그러나 지난해 8월 이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달러 약세 추세가 더욱 가속화되면서 상품 시장의 거품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WTI 유가 그래프 추이WTI 유가 그래프 추이


달러 약세의 헤지를 위한 투기적 수요가 급증하면서 상품 시장은 펀더멘털을 떠나 투기적 요인에 의해 좌우돼왔기 때문이다. 상품 가격 급등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겨 또 다시 인플레이션 헤지자금을 유입하게 만드는 등 악순환도 야기했다.

◇ 투기 상품가 거품 야기, 3년간 최대 460% 폭등



최근 상품 가격 상승세는 결국 투기성 자금 유입 등 비상업적 목적의 투기 수요가 늘어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는 원자재거래를 실수요자들의 거래인 상업적 거래와 단기 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투기 거래 및 포트폴리오 투자를 포함하는 비상업적 거래로 구분한다.

일반적으로 비상업적 거래는 투기 거래를 의미한다. 특히 최근에는 주식 시장 하락 등이 겹치며 갈곳을 잃은 자금들이 상품 시장으로 대거 몰려들며 비상업적 거래는 더욱 확대됐다.

지난 2003년 이후 원유는 250%, 옥수수는 130%, 철광석은 350%, 구리는 무려 460%나 폭등했다. 맥쿼리 연구소는 원자재 펀드에 투자된 자금이 올해 19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투기적 수요에 따른 상품 시장의 거품이 곧 붕괴될 것이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세계 성장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와 함께 상품 시장의 자금 유입이 과열 양상을 띄면서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하 여력이 줄어들면서 달러 약세가 진정될 것이란 관측도 상품 시장 가격 하락세에 반영됐다.

일각에서는 상품 시장이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거품 붕괴와 같은 커다란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마저 제기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최근 17일자 칼럼을 통해 원유 가격이 30% 급락하는 등 상품 시장의 거품이 곧 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FT는 최근들어 줄곧 상품 시장의 거품이 꺼질 것을 경고하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 상품 종류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락

결국 가격 급락은 19일(현지시간) 현실로 발생했다. 그동안 무서운 랠리를 펼치며 시장 불확실성을 잔뜩 키워온 원유, 금, 밀, 구리 등이 무차별적인 폭락세를 보임에 따라 상품 가격 거품 붕괴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UBS 블룸버그 상품 지수는 대두, 밀, 커피, 원유 등 상품 가격이 급락하며 전날보다 4.1%(61.3866포인트) 떨어진 1428.009로 마감했다. UBS 블룸버그 상품 지수는 지난 4거래일동안 3일 하락했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 2월 29일에 비해서는 9.3% 하락한 상황이다. UBS 블룸버그 상품 지수는 지난 17일에는 4.6% 하락하며 1997년 10월 3일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는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전날보다 4.94달러(4.5%) 떨어진 배럴당 104.48달러로 마감했다. WTI는 장중 한때 102.95달러까지 떨어지는 약세를 보였다.

4월 인도분 금 가격은 온스당 59달러(5.9%) 급락한 945.30달러로 장을 마쳤다. 금가격 하락폭은 2006년 6월 이후 최대이다. 은 선물 낙폭도 7%에 달했다. 구리 5월물 가격도 뉴욕상업거래소(NYMEX) 산하 상품거래소에서 전날보다 11.3센트(3%) 하락한 파운드당 3.6335달러를 기록했다.

곡물 가격도 하락세를 보였다. 밀 가격은 시카고상업거래소(CBOT)에서 가격 제한폭까지 급락했다. 밀 5월물 가격은 가격 제한폭인 90센트(7.7%) 떨어진 부셸당 10.74달러를 기록했다. 밀 선물 가격은 지난달 27일 이후 20% 이상 급락한 상황이다.

옥수수 5월물 가격은 전날보다 19.5센트(3.6%) 내린 부셸당 5.2775달러를, 대두 5월물 가격은 전일대비 50센트(3.6%) 하락한 부셸당 12.57달러로 장을 마쳤다. 커피 5월물 가격도 전날보다 4.6센트(3.3%) 떨어진 1.3295달러를 기록했다.

◇ "거품 꺼졌다" 고통스런 결말 조심

이처럼 상품 가격 하락세가 가시화되자 거품이 붕괴되고 있다는 분석이 줄을 잇고 있다. 앨러론 트레이딩의 필 플린 부사장은 "상품시장의 거품이 빠지고 있으며, 파티는 끝났다"고 단언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금융위기의 대안으로 상품에 투자했던 자금을 빼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이번 0.75%p 금리 인하로 향후 인하 여력이 상당히 줄어듦에 따라 달러 가치 급락세가 이제 진정될 것이란 관측도 상품 가격 하락세에 반영되고 있다.

마이크 모란 다이와 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의 성명서 내용은 인플레에 대해 보다 관심을 기울이고, 금리인하에 보다 신중한 자세를 취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며 상품시장 약세 배경을 설명했다. 한마디로 앞으로 금리 인하폭이 크지 않을 것이며 달러 약세도 진정될 것이란 분석이다.

상품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지난 1999년 인플레이션이 상품 가격 상승세를 이끌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로저스는 이날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높은 인플레이션은 상품 가격 역시 정점에 거의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발 뒤로 물러섰다.

필 플린은 "연준이 금리 인하를 통해 달러 약세를 가중시키며 상품 시장의 거품을 창출했다"고 전제한 후 "그러나 연준이 금리를 시장 예상보다 낮게 내리면서 거품을 터뜨렸다"고 지적했다.

역사적으로 실수요가 아니라 투기적 유인의 비중 증가와 이에 따른 가격 상승은 향후 가격 급락이라는 부작용을 반드시 초래해왔다. 이에 따라 투기 수요에 의해 가격이 잔뜩 부풀어 온 상품 시장도 가격 급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