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와 자율?"··정체성없는 MB노믹스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03.1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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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15개 부처 업무보고 가운데 9개가 끝났다. 업무보고 중 이 대통령이 쏟아낸 발언에는 'MB노믹스'(MB의 경제철학) 등 이 대통령만의 국정운영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러나 발언을 꼼꼼히 따져보면 일관성이 없다. 자율과 경쟁을 강조하다가 "라면값 100원"을 운운하며 정부의 세세한 개입을 강조하기도 한다. "난 본능적으로 노동자 프렌들리"라고 하면서도 '반 노동자' 같이 들리는 발언도 내놓는 식이다.



이 대통령이 강조해 온 '실용주의'가 사실상 '정체성 부재' 또는 '철학의 빈곤'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세계화, 개방화된 사회에 맞게 실질적 효과가 있는 규제개혁이 필요하다"며 "공직자들의 자세만 달라져도 규제의 50%는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규제 최소화'라는 대선 공약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던 이 대통령이 지난 17일 지식경제부 업무보고에서는 "생활필수품 50개 가량의 수급을 정부가 직접 관리해 서민물가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9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는 "50개 생활필수품의 물량공급을 조절하는 등 집중 관리하면 서민물가는 잘 될 것"이라며 '물량공급 조절'이란 표현까지 썼다.

국정운영 방식에 대한 철학도 갈피를 잡기 어렵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일 재정부 업무보고에서 "경제의 상당 부분은 심리"라며 "국민들이 편안하게 소비와 투자 등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경제는 국민들의 몫이고 정부는 큰 틀에서 환경만 조성하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극히 세부적인 부분까지 직접 언급하며 정부의 대응을 주문하기도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당장 라면값이 100원 올랐는데, 평소 라면을 먹지 않는 계층은 신경쓸 일이 아니지만 서민들에게는 100원 인상이 큰 타격"이라고 했다. 지난 10일 재정부 업무보고에서는 하루 220대가 오가는 지방의 한 고속도로 톨게이트 얘기까지 꺼냈다.

노동자에 대한 발언도 '친 노동자'와 '반 노동자'를 오간다. 이 대통령은 지난 13일 노동부 업무보고에서 "나는 태생적으로, 본능적으로 노동자 프렌들리(친 노동자)"라고 했다. 그는 "굳이 따지면 나 자신이 노동자 출신"이라며 "내 마음 속에는 노동자 프렌들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19일 법무부 업무보고에서는 "한국 국민의 대부분은 법과 질서보다 떼를 쓰면 된다, 단체행동하면 더 통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노동자 진영을 자극할 만한 발언을 했다. 지난 10일 한국노총 창립 62주년 축하 메시지에서는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 법과 원칙을 엄정하고 공정하게 집행하겠다"고도 했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를 놓고 '실용주의'라는 명분 아래 일관성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들이 나온다.

이준구 서울대 교수(경제학부)는 "실용주의가 도를 넘으면 원칙이 실종된다는 점에서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과도한 실용주의의 폐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편의주의적, 실용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으면 원칙이 바로 서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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