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부, 환상의 짝꿍? 최악의 짝꿍?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03.18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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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한 경제-카스테라]

 1990년대 재정경제원에는 '환상의 짝꿍'과 '최악의 짝꿍'이 있었다. '환상의 짝꿍'이란 경제기획원 출신 과장과 재무부 출신 사무관의 조합을 말한다. '최악의 짝꿍'은 반대로 재무부 출신 과장과 기획원 출신 사무관의 배합이다.

 기획원과 재무부는 문화가 정반대였다. 기획원이 '동아리' 분위기라면 재무부는 '군대'였다. 기획원은 선후배간 스스럼없는 분위기에서 자유분방한 토론을 즐겼다. 반면 재무부는 위계질서가 확실해 과장과 사무관이 사실상의 주종 관계였다.



 과장이 사무관을 호출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재무부에서는 과장이 "아무개 사무관"하고 부르면 사무관은 과장의 자리로 쏜살같이 달려가 허리를 숙인 뒤 "네 부르셨습니까"라고 한다. 반면 기획원에서는 과장이 부르면 사무관이 "예?"하고 과장 쪽을 쳐다본다. 일어서서 대답하면 그나마 깍듯한 편이다.

 이처럼 상반된 분위기의 두 조직이 재경원으로 합쳐지면서 다양한 군상들이 만들어졌다.



 '기획원 과장-재무부 사무관' 조합에서 사무관은 과장을 깍듯하게 모셨고 과장은 사무관을 편하게 대했다. 서로가 만족하는 아름다운 관계였다. 하지만 '재무부 과장-기획원 사무관'의 경우는 달랐다. 그야말로 '문화쇼크'였다. 재무부 과장은 사무관에게 깍듯한 태도를 기대했지만 기획원 사무관은 과장을 편하게(?) 대했다. 재무부 과장 입장에선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세월이 가면서 재경원의 문화는 옛 재무부 방식으로 수렴됐다. 윗사람 입장에선 깍듯한 부하가 더 경쟁력있는 법이니 당연한 일이다. 옛 기획원 사람들을 중심으로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이 떨어져 나간 뒤 재정경제부의 문화는 옛 재무부 스타일로 굳어졌다. 그러는 사이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의 후신인 기획예산처는 다시 옛 기획원 분위기로 돌아갔다. 이런 재경부와 기획처가 통합되면서 재경원 시절 '환상의 짝꿍'과 '최악의 짝꿍'이 다시 부활하게 됐다.

 통합 직전까지도 재경부와 기획처의 문화는 여러모로 달랐다. 기획처에서 과장과 사무관이 외부인과 식사를 하면 사무관도 자유롭게 대화에 참여한다. 반면 재경부에서는 대개 식사 중 과장만 얘기할 뿐 사무관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또 재경부 국장들은 대개 일할 때 문을 닫아두고 나갈 때 문을 연다. 보안 유지를 중시해서다. 반대로 기획처 국장들은 일할 때 문을 열어두고 나갈 때 문을 닫는다. 업무 중 활발한 소통을 중히 여겨서다.

 이처럼 다른 분위기의 재경부와 기획처가 합쳐져 탄생한 기획재정부는 어떤 문화로 수렴될까. 옛 재경원 때 재무부의 문화가 기획원 문화를 잠식했듯 이번에도 재경부 문화가 압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반면 시대가 바뀌어 기획처 문화가 살아남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머슴'이라고 칭한 공무원들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라면 '주인'인 국민 입장에선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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