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운하계획과 토건국가

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08.03.1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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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운하계획과 토건국가


햇살이 따뜻해지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창 밖의 산수유 나무들이 노란 꽃을 곱게 피웠다. 새잎이 나오려면 아직 멀었지만 은행나무 가지에도 이미 봄물이 올라서 생명의 활력이 느껴진다. 다시금 자연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는 따사로운 봄날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해맑은 봄날에 우리의 소중한 자연을 둘러싸고 심각한 대립과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문제의 근원은 바로 ‘한반도 대운하’이다. 과연 운하계획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으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운하계획을 둘러싼 논란은 너무나 많다. 공학의 면에서 추진 쪽은 운하의 건설이 전혀 어렵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반대 쪽은 지질, 지형, 기후, 강수 등에서 운하의 건설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생태의 면에서 추진 쪽은 운하의 건설로 환경이 더욱 좋아진다고 주장하지만, 반대 쪽은 산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강을 콘크리트 옹벽으로 점령하기 때문에 운하의 건설은 ‘강의 죽음’이자 ‘자연의 학살’이라고 주장한다.

문화의 면에서 추진 쪽은 강바닥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반대 쪽은 강바닥에도 수만년에 걸쳐 온갖 문화재가 퇴적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홍수와 관련해서 추진 쪽은 홍수 피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반대 쪽은 수면이 높아지기 때문에 홍수 피해가 극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상수와 관련해서 추진 쪽은 약간 문제가 있어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반대 쪽은 상수의 양이 크게 줄어들고 더욱이 페놀오염과 같은 문제가 더욱 빈발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세계적으로 상수원을 대형 화물선이 오가는 운하로 개조해서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경우는 경제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듯하다. 이와 관련해서 찬성 쪽은 ‘경부운하’는 14조원으로 완공할 수 있으며, 200%를 넘는 놀라운 경제성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 쪽은 당연한 비용인 교량건축비와 유지관리비 등을 포함해서 ‘경부운하’의 건설비만 50조원을 넘을 것이며, 운하에서 화물선은 경운기보다도 훨씬 느린 속도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어떤 경제성도 지닐 수 없다고 주장한다.
 
찬성 쪽의 경제성 주장은 고려대 교수 출신인 곽승준 경제수석이 대표하고 있으며, 반대 쪽에서는 이준구 서울대 교수, 홍종호 한양대 교수 등이 조목조목 비판을 가했다.

최근에는 임석민 한신대 교수가 ‘경제학자들의 곡학아세’를 제목으로 한 논문을 발표해서 곽승준 교수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찬성 쪽이 제대로 자료를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토론에 임한다면, 경제성 논란은 훌륭한 학술토론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경제성 논란이 토건국가 문제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운하계획은 토건국가 문제에서 비롯된 대표적 사안이기 때문이다.

토건국가는 병적으로 비대한 토건업의 유지를 위해 불필요한 대규모 토건사업을 계속 벌여서 재정 탕진과 국토 파괴를 대대적으로 초래하는 기형국가를 뜻한다. 토건국가에서 건설업자와 투기꾼과 지주는 큰 돈을 벌지만, 대다수 국민은 계속 커다란 피해를 입는다.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는 생태위기에 대응하고 지식경제를 추구하는 쪽으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거대한 콘크리트 옹벽수로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망가진 강의 복원과 보존을 이루는 것에 있다.


자연은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원천이자 길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귀중한 자원이다. 토건국가 문제를 직시하라고, 밝은 햇살 아래 산수유 노란 꽃이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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