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골프 금지령

머니투데이 유승호 산업부장 2008.03.13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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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골프 금지령


 최근 공직자들이 골프 약속을 취소하고 있다고 한다. '골프 금지령' 파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류우익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지금 이 시점에서 골프를 치는 수석이나 비서관은 없을 것"이라고 한 마디한 것이 발단이 됐다.

 청와대 대변인이 "일하기 바쁜데 골프 칠 시간이 있겠느냐는 뜻일 뿐 골프 금지령은 없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눈치 빠른 관가는 금지령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골프보다 테니스를 즐기고, 최측근이 이런 발언을 했는데도 골프를 즐기는 공직자가 있을까 싶다.



 "언제 금지했느냐"는 해명이 먹히지 않는 이유가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퇴임 후에야 "공무원 골프를 금지한 사실이 없고 다만 내가 골프를 안 치겠다고 말했는데 밑에서 과민반응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참모들에게 골프를 못하게 하고 싶은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적어도 한국에서 골프와 정치는 상극이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3·1절에 골프가 아니라 테니스를 쳤다면 일이 그렇게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테니스를 즐기는 모습을 공개했지만 골프를 치는 장면이었다면 공개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호사가들이 만든 골프와 정치의 10가지 공통점을 봐도 골프를 즐기는 정치인에 대한 냉소적 시각을 확인할 수 있다.

 "좌파와 우파가 있으나 중도가 환영받는다. 늘 가방 들어주는 사람과 같이 다닌다.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한다. 남의 돈으로 즐기는 사람도 많다. 양심을 외치지만 눈속임수가 많다. 돈이 오고간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끝장이다. 걸핏하면 은퇴한다. 직접 해보기 전엔 맛을 모른다. 가장 큰 잘못은 스스로 만든다."

 한국의 골프인구가 300만명을 넘었다는 비공식 통계에도 불구하고 골프는 한국에서 대중스포츠로 인정받지 못한다. 골프는 대중화됐을지 모르지만 골프장이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골프장은 대부분 한번 라운딩에 20만~30만원을 지출해야 하는 고급회원제(프라이빗)로 운영된다.


 그러나 '실용주의 정치'를 표방하는 이 대통령과 골프 금지령은 어쩐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밑바닥 경기의 침체를 돌파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할 상황이라면 골프 대중화, 골프장 건설 촉진책을 펴야 할 판이다. 논농사보다 골프 그린용 잔디 재배가 수익성이 좋다는 얘기는 솔깃하다.

골프 금지령으로 골프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보이기보다 2만∼10만원으로 즐길 수 있는 대중골프장을 많이 지을 수도 있다. 골프는 스포츠이자 산업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기강잡기로 어느 산업이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공직자 골프를 금지한다고 골프장이 안 지어지느냐고 반문한다면 딱히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다. 그러나 공직자들이 혜택에서 벗어나 있는 어떤 분야가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것은 오랜 경험칙이다. 더욱이 골프 금지령이 해외 토픽에 오르내리는 것도 그다지 이득이 될 것같지 않다.

 정권 초기 공직사회의 기강을 잡아야 하는 이 대통령이 공직자들에게 "골프를 쳐도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면 적당한 시점에 그냥 골프 치는 모습을 한번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 퇴임 후에야 애매한 해명을 하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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