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2.0]잘 하려고 만든 '금융공학'의 유령

손 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2008.03.1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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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2.0]잘 하려고 만든 '금융공학'의 유령


현대공학의 발전은 건물·교량 건설에서 자동차·비행기 제조에 이르기까지 기능·디자인과 함께 안전(safety)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금융공학(Financial Engineering)도 새로운 구조물을 설계할 때 안전을 염두에 두면서 새로운 금융상품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현대공학도 붕괴나 사고를 완전히 막지는 못합니다. 그 원인은 자연재해, 부실시공, 사용자 부주의 같은 것이지, 구조 계산의 결함으로 인한 경우는 드뭅니다. 금융공학에서도 재난은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원인은 구조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수학과 계산능력의 발전으로 금융공학도 날로 발전하는데 왜 재난상황은 더 빈번히, 더 강력하게 몰려오는 것일까요. (참고: Richard Bookstaber, A demon of our own design, 2007)



'서브프라임 위기'를 한번 보시죠. 불똥은 주택가격 하락에서 시작됩니다. 프라임(우량)에 못미치는 가계에 대한 대출인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부실화되기 시작하면서 모기지를 제공한 회사가 휘청거립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믿을 만한 투자은행들이 이 모기지를 조립해서 이런저런 액세서리를 붙여 그럴싸하게 포장한 증권으로 발행했습니다. 금융공학의 방법으로 말입니다. 이 화재는 다시 별 저항 없이 증권의 신용등급을 평가한 신용평가사, 높은 수익을 올릴 것을 기대하고 증권을 사들인 헤지펀드, 헤지펀드에 돈을 빌려준 상업은행, 부실증권을 대신 갚아주는 증권보증회사까지 번집니다. 금융시스템 전체가 화마로 뒤덮입니다. 감독당국(watchdog)은 재난 상황이 파악조차 안된다고 하고 재난이 현재진행형이라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교량이나 건물에 너무 많은 사람이 일시에 몰려들어 하중을 버티지 못하면 붕괴 위험이 있습니다. 금융공학으로 태어난 금융상품도 수요가 너무 늘어나면 붕괴하는 것인가요?

혹시 복잡한 구조를 설계하고 계산할 때 뭔가 허점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를테면 증권화 대상인 대출의 현금흐름을 증권의 부도 위험과 완전히 분리하지 못했다든가 말이죠. 아니면 완벽한 구조를 설계해도 '탐욕과 공포'라는 인간의 투자심리가 상품설계에 반영되어 있지 않으니 체념해야 하는 것인가요.

금융공학은 애당초 위험을 줄이려는 투자자의 요구에 부응하겠다고 고안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금융공학으로 인해 오히려 위험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으니…. 혹시 '오페라의 유령' 보셨나요. 뛰어난 능력으로 완벽하게 설계한 오페라하우스, 사람을 매혹시키는 감미로운 노랫소리, 그러나 가면 뒤에 감춰진 공포를 느끼게 하는 몰골, 그리고 한 여인을 향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 이 주인공이 금융공학과 흡사해 보입니다. 집착의 대상을 투자자로 바꾸기만 하면요.


금융공학도 여러분! 상품설계하실 때 안전하게 만들어 주십시오. 설계자 자신도 파악 못할 위험이 있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투자자 여러분! 믿을 만한 회사가 매력적인 상품을 내놓아도 투자 위험이 잘 파악되지 않으면 사지 마십시오. 금융상품은 건물이나 자동차처럼 하자 보수나 리콜이 없답니다.

감독당국에도 한 마디! 금융상품구조가 너무 복잡하니 안전기준을 만들어야겠다고요? 역효과가 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금융공학은 생리적으로 그 기준에 맞는 또다른 기이한 구조물을 만들어낼 것이거든요. 유령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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