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수 장관이 주식을 갖게 된 사연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2008.03.0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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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책에 따라 30년 동안 갖고 있던 주식 꼭 팔아야 할까?

지난달 27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인사청문회장.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통합민주당 박영선 의원으로부터 강한 질타를 받았다. 배우자가 보유한 삼성전자 (62,800원 ▼200 -0.32%) LG전자 (111,000원 ▲900 +0.82%) 등 2억3000여만원어치 주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박 의원은 "주식시장을 관할하는 재경부장관으로서는 가져서는 안되는 주식"이라며 처분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고, 강 장관은 "재무부 사무관 때부터 30년 이상 갖고 있던 주식"이라며 이를 수용했다.



그는 이 주식을 어떻게 취득했을까. 1970년 국세청 경주세무서 재경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강 장관. 1972년 북대구 세무서 조사과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다음해 1월 '기업공개촉진법'이 전격 시행됐다.

당시 정부는 은행대출·외국차관·단기사채를 과도하게 차입한 기업들의 부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금융 위기감이 고조됐다. 1972년 전례가 없는 '8.3 사채동결 긴급명령 조치'가 이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돌파구를 기업들의 주식공개에서 찾았다. 사채동결 같은 일시적 처방이 아닌 재무구조 취약성을 근본적으로 해결키로 한 것. 1968년 자본시장육성법을 제정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던 터. 강제적인 기업공개가 이뤄졌다. 이행치 않으면 세법상 불이익이 부과됐다. 금융지원도 제한됐다.

하지만 일부 재벌과 대기업들은 이를 외면했다. 정부 특혜를 등에 업고 외형만 키우며 폐쇄적인 경영체제를 고수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다음해 '5.29 특별지시사항'을 통해 기업 공개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후 1975년 6월까지 당시 상장법인수의 3분의 1인 48개 업체가 공개됐다.

그해 8월 기업공개보완시책이 잇따라 발표됐다. '공개명령권'을 발동해 주식시장 상장을 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강력했다. 1974~1979년 309개 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1956년 증권거래소가 개설된 이래 1973년까지 공개된 회사는 단 66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주식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상장이 돼도 청약이 제대로 이뤄질리 만무했다. 김용환 당시 재무부장관은 '주식인구 100만명 운동'을 벌였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개발독재에나 가능했던 '이벤트'다.

강 장관은 "당시에는 주식을 살 사람이 없어 재무부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김용환 장관의 지시가 있었다"며 "청약이 안될 때나 신주인수권이 나오면 7~8주씩 해서 30년간 쌓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30년 넘게 지내는 동안 삼성전자 주가는 1000배 이상 올라 큰 목돈이 되었다. 주식은 장기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눈 셈. 그는 "용돈이 필요해서 삼성전자 몇주를 판 것 이외에는 그동안 사고판 게 없다"며 다소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강 장관은 '주주 100만명 운동' 때 한국비료도 샀다. 그런데 이 주식은 1980년대 후반 강 장관이 증권보험국장을 할 때 상장폐지됐다. 담당국장으로 보고를 받았지만, 그는 자신이 보유한 주식임을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지금도 한국비료 주식 실물을 보관하고 있다. "아무런 가치가 없지만 40년의 삶을 보여주는 추억거리이기 때문"이다.

 강 장관은 "청문회 때 문제가 돼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판다고 했다"고 했다. 인사청문회는 국무위원들의 비전과 도덕성, 능력을 철저하게 따지는 자리다. 옥석을 세세하게 가려내야 한다. 이해상충에 따른 문제의 소지가 있다면 주식을 처분하는게 마땅하다. 하지만 자본시장육성을 위해 솔선수범 차원에서 보유하게 됐던 주식을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상황에 변했다고 꼭 팔아야 할까? 주식이 재산이라기보다 '삶의 역사'이기도 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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