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광고판, 스타가 곧 경제다

배현정 기자 2008.03.1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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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스포츠 스타 마케팅

"꺄아, 베컴이다, 나 베컴 봤어!"

지난달 29일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위 아 스트롱 위드 베컴' 행사장. 먼 발치에서 베컴을 본 박모(42) 씨는 왠지 횡재한 것 같은 기분에 나이도 잊고 소리쳤다.

그러나 알고 보면 진짜 행운을 안은 사람은 따로 있을지 모른다. 스타와 기업 입장에선 그들의 홍보행사에 열렬한 환호를 보내주는 팬들이 바로 '돈'이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를 개최한 '아디다스'의 홍보대행사인 이목커뮤니케이션의 권재희 과장은 "스포츠 선수 관련 행사라 스포츠신문이나 관련 업계에서만 관심을 보일 줄 알았는데 연예 매체나 케이블 매체까지 취재 요청이 쏟아지는 등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베컴의 팀 유니폼을 본딴 'LA 갤럭시' 저지도 날개돋친 듯 팔렸다. LA갤럭시는 그간 국내에서 눈길을 끌만큼 인기구단이 아니었지만, 베컴의 LA갤럭시 저지는 이번 행사를 통해 아디다스의 히트 상품 반열에 올랐다.



◆ 스포츠 스타는 황금의 경제 파워

과거 스포츠와 스포츠 스타는 국민들의 눈가림 수단으로 여겨지며 비하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3S(섹스, 스포츠, 스크린)다. 하지만 이제 스포츠 스타가 만들어내는 가치는 그저 '스포츠, 오락'의 관점에서만 접근할 것이 아니다.

홍사종 미래상상연구소 대표는 "과거 이데올로기를 가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했던 스포츠가 이제는 대중스타와 절묘하게 결합해서 생산의 중요한 한 축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스포츠 스타가 만들어내는 스포츠 경제파워다.


요즘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포츠 스타는 '피겨 요정' 김연아와 '마린 보이' 박태환. 피겨스케이팅과 수영이라는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딛고 세계 정상에 선 이들의 눈물과 감동의 이야기는 국민들을 열광시켰다.

당연히 광고계에서도 섭외 0순위에 올라있는 '블루칩'. 그들이 전해오는 승전보와 스포츠를 통한 승부라는 깨끗한 이미지가 광고 효과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지난해 봄 LG생활건강의 섬유유연제 '샤프란' CF에 등장한 데 이어, 롯데칠성 '아이시스'와 교복 '아이비클럽' 광고 등에 잇달아 출연해 해당 기업의 광고주를 웃음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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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생활건강 홍보팀 관계자는 "김연아 선수의 모델 선정은 샤프란이 섬유유연제 광고 하면 떠오르는 '주부가 나와 빨래하는' 공식을 벗어나 소비자의 감성적인 기대 심리까지 만족시키는 브랜드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면서 "김연아 선수의 높은 인지도와 신선한 이미지가 만족할만한 광고 성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마린보이' 박태환을 모델로 썼던 SK텔레콤의 대표 브랜드 'T' 광고도 박태환 효과를 톡톡히 봤다. 'T' 완전정복 광고는 그동안 국민배우 장동건을 위시하여 미스코리아 이하늬, 신세대 완소남 정경호 등 스타 연예인 군단을 시리즈로 등장시켰으나 스포츠 스타를 모델로 기용한 것은 박태환이 처음. 결과는 대박이었다. SK텔레콤측은 "광고 상기도나 전체 분위기에 대한 선호도가 타 완전정복 광고들에 비해 한층 높았다"고 평했다.

이러한 스타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김연아와 박태환은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2007년 10대 히트상품' 가운데 3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UCC, 차이나펀드, CMA, 기능성화장품 BB(Blemish Balm) 크림 등 여느 컨텐츠와 제품 위주의 히트 상품 중에서 원더걸스(8위)와 더불어 이례적으로 '스타'가 선정된 사례이기도 했다.

이민훈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김연아와 박태환 선수의 인기는 기획에 의한 마케팅의 결과가 아니라 10대 어린 선수들의 활약에 대한 국민들의 칭찬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 스포츠의 건전성은 브랜드 이미지 상승 동력

그렇다면 스포츠 스타의 경제적 효과는 얼마나 될까? 스포츠 스타는 단순히 광고 효과만 높은 것이 아니다. 스포츠가 가진 건전한 이미지는 기업의 신뢰도 향상으로까지 이어진다. 또한 '스포츠 영웅'을 닮고 싶어하는 팬들의 심리가 자연스레 매출 증대로 연결된다.

리복은 지난해 세계적인 축구스타 티에르 앙리가 제품 개발에 참여한 축구화 '스프린트 핏'을 판매하며 4박 5일의 앙리 방한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이 제품은 한정 판매품임에도 불구하고 매출이 20% 이상 상승했고 현재까지도 온라인에서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에 거래될 정도로 식지 않는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움직이는 광고판, 스타가 곧 경제다
스포츠 스타는 일반 광고 모델보다 신뢰도가 높고 제품 노출 또한 자연스럽기 때문에 연예인 모델과 비교할 수 없는 마케팅 효과를 낸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이나영 리복코리아 마케팅 본부 이사는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이 바로 후원 선수"라며 "장기적인 마케팅 관점에서 브랜드의 이미지와 부합하는지를 우선 고려한 후 선수의 인지도와 성장 가능성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포츠 선수와 별반 연관이 없는 금융계에서도 스포츠 스타 마케팅의 위력은 빛났다. 지난해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은 고환암을 극복하고 세계 최대 사이클대회 '투르 드 프랑스' 7연패를 달성한 철인 랜스 암스트롱을 내세워 '흥행성'과 '공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랜스 암스트롱은 입국에서부터 출국까지 국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고 '투르 드 코리아 2007'의 개막 경기와 축하 퍼레이드는 공중파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 됐다. 이 과정에서 타이틀 스폰서인 현대캐피탈이 대대적으로 노출된 것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캐피탈은 친환경 스포츠를 지원하는 기업, 비인기 종목의 저변확대를 위해 힘쓰는 기업, 아시아 최대규모의 국제대회 개최를 통해 전국 방방곡곡을 세계에 알리는 기업 등의 이미지를 구축하여 수익으로 환산하기 힘든 기업 홍보 효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스포츠 스타로 '세계적 비즈니스' 한다

스포츠 스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포츠 스타를 마케팅에 이용하려는 상표출원도 늘고 있다. 그러나 특정 선수와 종목에 편중돼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특허청이 지금까지 국내에 출원된 스포츠 관련 상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스포츠 스타 관련 상표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41건)가 가장 많고 다음으로 아놀드 퍼머(39건), 잭 니클라우스(31건) 등 골프스타들이 대거 포함됐다.
다음으로 축구 스타인 베컴과 거스 히딩크, 테니스 스타인 보리스 베커와 샤라 포바 등의 상표 출원이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대다수 국내 기업들의 스포츠마케팅은 특정 인기 선수와 종목에 한정돼 있고 치밀한 전략보다는 주먹구구식 마케팅으로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꼬집었다.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래상상연구소의 홍 대표는 "스포츠 스타의 눈물과 땀이 배어있는 이야기는 잘 가공하면 '돈'이 될 수 있다"면서 스포츠 마케팅에 대한 근시안적인 시각의 전환을 주문했다. 그는 또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박지성을 연봉 52억원(2006년)에 데려가 단 4일간의 한국방문을 통해 200억원이 넘는 (역)수익을 올린 것처럼 우리나라도 21세기 새로운 자원인 스포츠 스타를 통해 세계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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