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이긴 와인들

전두환 신한카드 부사장 2008.03.17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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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전두환의 '나의 와인스토리'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어려운 여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지만 정작 하늘이 내려준 천부의 장점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산다. 천재는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이 무엇인지 알아차린 사람이다. 물리학이나 수학분야의 천재들이 이룬 성과를 보면 나와 같은 둔재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인간의 능력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인류가 이루어온 문명의 대부분은 거친 환경의 도전에 대한 민초들의 짜잔하고 질긴 대응들의 산물이다.



프랑스의 특출한 와인산지는 대서양의 축복 보르도와 천혜의 땅 부르고뉴지역이다. 보르도의 바로 북쪽 코냑지방은 신맛이 많은 질이 좋지 않은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이었다. 17세기경 온 세상을 누비던 네델란드 상인이 운송의 편리함을 이유로 와인을 농축하여 지금은 브랜디의 대명사가 된 코냑을 만들기 시작했다.

유니블랑이란 품종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을 증류하여 만든 후 길게는 50년 동안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다. 코냑은 끝없이 농축된 꽃향기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브랜디가 되었다. 코냑은 그 지방에서 재배된 포도주로 만든 브랜디에만 코냑이란 명칭을 쓸 수 있다. 코냑지방의 와인이 값비싼 고급와인이었다면 누가 감히 그 와인을 솥단지에 부어 끓일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부르고뉴지역에 속하지만 귀족품종인 피노누아가 제대로 재배되지 않아 가벼운 저가의 가메 품종이 잘 어울리는 보졸레지역은 조르쥐 뒤뵈프라는 마케팅 천재가 나타나기 전 까지는 장기보관이 어려운 싸구려 와인의 생산지였다. 오래 숙성할 수 없는 보졸레 누보의 단점을 오히려 그해 수확한 포도로 빨리 만들어 빨리 그해에 마시자는 역발상을 통해 전 세계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불루오션 시장을 창출하였다.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 0시” 가 되면 보졸레 누보는 전 세계에 동시에 출하된다. 기막힌 상술이다.

싼 보졸레 누보가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비싸다는 불만이 많다. 일부는 유통과정의 거품을 제거해야 하겠지만 보졸레 누보는 전 세계에서 동시에 마시기 시작하는 와인이기에 배로 수송하는 대부분의 와인과 달리 비행기로 나르기 때문에 현지보다 높은 가격이 불가피한 부분도 있다. 지구인이 함께 동시에 즐기는 파티에 참석하는 입장료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가장 떼루와에 집착하는 부르고뉴지역에서 별 볼일 없는 품종으로 너무나 크게 성공한 보졸레의 농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역경을 이긴 와인들


와인 재배의 북방한계선에 위치한 상파뉴지역은 봄 서리부터 추운 겨울까지 순탄한 기후가 아니지만 마른강과 그 유역의 백악질 토양이 낮 동안의 태양열을 품어 온도를 유지케 한다. 샴페인은 화이트 와인계열이지만 샤르도네와 함께 서늘한 기후에 알맞은 레드와인 계열의 피노 누와, 피노 뫼니에를 재배하여 샤르도네만으로 블랑 드 블랑 (Blanc de Blancs), 피노 누와등으로 블랑 드 누와(Blanc de Noirs)와 대체로 값이 더 비싼 핑크빛 샴페인 로제를 만들고 있다.

샴페인은 병속에서 와인을 한번 더 발효시키는 과정에서 생기는 탄산가스를 와인 속에 남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와인의 부가가치를 배가시키고 많은 매니아를 만들었다. 원스턴 처칠은 폴 로저 샴페인을 너무나 좋아하여 평생 마실 샴페인을 한꺼번에 주문하였다 한다.


코냑, 보졸레 누보, 샴페인등은 주어진 환경의 어려움을 새로운 기술개발이나 역발상의 아이디어로 취약함을 장점으로 만들었다. 치열한 경쟁시장인 레드오션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가나 FTA등으로 미래를 우려하는 우리 농부들에게 시사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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