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학원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머니투데이 박형기 국제부장 2008.03.0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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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뷰]학원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우리 집은 영어로 먹고 산다. 나는 머니투데이 국제부장이고, 집사람은 영어학원을 운영한다. 국제부 데스크가 하는 일은 하루 종일 외신 사이트를 뒤지며 뉴스를 픽업하는 것이다. 이 일을 8년째 해오고 있다. 한 마디로 붙박이 국제부장인 셈이다. 집사람 또한 영어학원을 운영하기 때문에 영어가 생명 줄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의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이 초미의 관심사다. 나는 별로지만 집사람은 사활이 걸려 있다. 공교육에서 영어를 다 해결한다면 이제 학원의 문을 닫아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사람은 천하태평이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집사람은 한국의 어머니들을 믿는다. 한국 어머니들은 자식이 영어를 잘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자식이 영어를 ‘남보다 더’ 잘하는 것을 바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영어가 아니라 ‘남보다 더’이다.

아줌마들의 지나친 교육열 때문에 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영어로 하면 학원의 말하기 강좌가 번성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공교육에서 영어를 커버해주기 때문에 사교육을 따로 받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지만 공교육에서 영어교육을 강화하면 사교육의 영어 수요는 늘었으면 늘었지 결코 줄지 않을 것이다.



학교에서 영어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면 말하기 선행학습이다 뭐다 해서 영어 학원가에 더욱 많은 학생들이 몰릴 것이다. 집사람도 이미 외국인 강사 확대 채용을 계획하고 있다. 실제 최근 학원가는 논술학원이 지고 영어학원이 뜨고 있다. 지금 강남에서는 이른바 몰입식 교육을 실시하는 학원이 문전성시이고, 한달에 200만원하는 영어 유치원도 자리가 없어서 난리다. MB 덕분에 영어 학원 전성시대가 온 셈이다.

영어공교육 강화가 이미 사교육을 더욱 부추기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영어 공교육 강화정책은 올바른 정책이다. 인도가 최근 세계경제의 신데렐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누가 뭐래도 영어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잘나가는 두바이 싱가포르 홍콩 모두 영어가 공용어다. 특히 97년 반환 이후 중국어 교육을 강화했던 홍콩은 최근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며 영어 교육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영어수업을 영어로 하는 방법으로 말하기 듣기 중심으로 영어교육을 전환하려는 것도 올바른 선택이다. 한국의 영어교육은 읽기 쓰기 중심에서 말하기 듣기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특히 세계가 글로벌화 함에 따라 읽고 쓰는 능력보다 말하고 듣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해졌다. 70~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 외국인과 접촉할 수 있었던 통로는 고작 ‘펜팔’ 이었다. 펜팔은 읽고 쓰기만 하면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라도 해외에 나갈 수 있고, 국내에서도 외국인과의 접촉이 빈번해 졌다. 지금은 읽고 쓰는 능력보다 말하고 듣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영어로 강의할 선생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것이다. 애들의 입을 틔우기 전에 선생의 입부터 틔우는 것이 급선무다.

이 부분은 당초 우려보다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한국의 영어교사는 상당한 인재들이다.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 교직이다. 따라서 재원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대부분 영어교사들이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명문대 영어교육과에 들어간 재원들이다. 때문에 이들에게 말하기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키면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기자는 홍콩에서 2년 남짓 살았다. 홍콩에는 영어학교와 광둥어학교가 있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학교를 보낸다. 그러나 영어학교 선생들은 대부분 광둥사람들이다. 교장과 학생과장, 교무과장 등 주요 포스트만 영국인이 맡고 나머지는 모두 광둥인이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 해외 유학 경험이 있고, 영어를 하는데 큰 불편함이 없다. 그러나 이들의 영어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홍콩식 영어 즉 홍클리시를 구사한다. 한국에는 콩글리시가 있듯이 싱가포르에는 싱글리시가, 인도에는 힝글리시(Hindu English)가 있다. 영어로 교육을 실시하는 아시아 어느 국가도 완벽한 영어로 교육을 시키는 나라는 없다. 만약 완벽한 영어교육을 하려 한다면 교사를 모두 ‘네이티브(원어민)’로 바꿔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의 영어선생들도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수업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특히 선생들은 똑같은 강의를 여러 차례 되풀이 한다. 같은 수업을 10여 차례 되풀이한다면 강의의 내용을 거의 외우게 된다. 이렇게 2~3년만 하면 한국의 영어 교사들도 유창한 영어로 강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밝힌 대로 집사람은 학원을 경영한다. 가까운 사촌 여동생은 영어교사다. 사촌 여동생은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썩 잘해 지방명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집사람은 사범대에 진학하질 못했다. 아마도 실력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의 영어 실력은 천양지차다. 집사람은 이미 영어로 수업을 한다. 또 이명박 정부의 영어공교육 강화를 기회로 보고 있다. 그러나 사촌 여동생은 벌써부터 영어로 수업하는 것만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이란다.



학원 강사들은 광야에 나와 있다.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바로 도태된다. 수업이 조금만 부실하면 학생들은 떠나고, 강사도 학원을 떠나야 한다. 강사들은 적자생존의 정글에 내버려져 있다. 그러나 학교 선생들은 온실 속의 화초다. 교직이라는 철밥통으로 인해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직업이 보장된다.

학창시절에는 영어교사들이 더 영어를 잘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영어강사들이 영어교사보다 영어를 잘하게 된다. 영어강사는 시장의 논리가 적용되는 전쟁터에 나와 있고, 영어교사는 교직이라는 핵우산 아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영어교사들은 고급 인재들이다. 이들은 영어를 영어로 수업할 충분한 자질이 있다. 이 같은 인재의 풀을 썩히는 것 또한 국력낭비다. 이들에게 학원 강사 같이 시장의 논리를 적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잠재력을 일깨우자는 것일 뿐이다.



영어 교사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해 영어강사보다 영어교사의 실력이 더 좋아지면 영어 교육의 패권은 자연스럽게 사교육에서 공교육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러면 집사람의 학원은 문을 닫아야 한다. 집사람의 학원이 망할지라도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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