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실질가격 역사적 고점 넘었다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08.03.0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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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중 103.95불, 1980년 기록한 103.76불 상회

3일(현지시간) 국제 유가가 드디어 1980년대 초 기록한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기준 사상 최고치를 넘어섰다.

유가는 올들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왔다. 그러나 이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지 않은 단순한 명목 기준에 불과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지난 1980년 4월 기록한 39.50달러가 실질 가치로 환산할 경우 103.76달러가 된다"며 103.76달러를 그동안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유가의 역사적 고점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아왔다.



이날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4월물 가격이 장중 배럴당 103.95달러를 기록, 사상처음으로 역사적 고점인 103.76달러를 뛰어넘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달성한 셈이다.

WSJ, NYT 등 주요 언론들도 일제히 유가가 드디어 장중이긴 하지만 역사적 고점을 뛰어 넘었다며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날 종가는 전날보다 61센트(0.6%) 상승한 배럴당 102.45달러를 기록했다.

◇ 유가 급등 대체 투자 유입 때문

유가가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기준 사상 최고치 마저 넘어선 것은 투자자들이 약달러와 신용위기의 대체투자처로 원자재 시장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의 급등은 무엇보다 연금펀드, 헤지펀드, 투기세력 등이 수익을 노리고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에 집중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지난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경제 성장을 지지하기 위해 추가 금리 인하를 단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후 이러한 대체 투자 유입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세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석유 전문가인 필립 벌리저는 "투자자들이 연준에 대한 신뢰를 잃음에 따라 안전한 실물 투자 자산을 찾고 있다"면서 "연준이 인플레이션 대신 경제 성장을 선택함에 따라 투자자들은 대거 인플레이션 헤지 투자 대상인 원자재로 몰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최대 연금펀드인 캘퍼스는 지난주 금, 은, 원유, 밀 등 원자재에 대한 투자를 2010년까지 72억달러로 16배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 약달러도 대체 투자 유입 가속



특히 최근 에너지 가격 급등은 약달러에도 더욱 영향받고 있다. 이날 장중 달러/유로 환율은 1.5274달러까지 떨어지며 사상 최고치(달러 가치 최저)를 경신했다. 달러는 엔에 대해서도 3년래 최저를 기록했다.

원유를 비롯한 주요 원자재들은 대부분 달러로 거래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하락할 경우 이들 원자재 가격은 오르는 경향을 나타낸다. 인플레이션 뿐만 아니라 약달러에 대한 대체 투자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PFC에너지의 이사인 로저 디완은 "유가는 달러 향방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 크게 오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가는 지난 2000년 이후 미국과 이머징 국가들의 원유 수요가 급증하면서 4배 가량 급등했다. 그러나 이 같은 유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높은 비용 전가를 충분히 흡수해내 글로벌 경제 성장세는 별다른 영향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경제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여파로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유가 급등이 글로벌 경제에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중국과 인도 등 이머징 국가들의 꺾이지 않는 원유 수요 증가도 유가 급등에 한몫하면서 원자재 가격 상승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 과거 오일 쇼크, 공급 충격에 따른 것

최근 유가 급등은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과거 원유 위기는 1973년 중동 국가들의 석유 수출 제한. 1979년 이란 혁명,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발발 등 공급 충격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원유 급등은 투기 수요 등 수요 충격에 의한 것이다.

감소 추세에 있던 에너지 의존도도 유가 급등으로 다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 초반 미국 가계의 가처분 소득에서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8%를 기록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에는 가처분 소득에서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4%로 줄어들었다. 유가가 계속 급등하면서 지난해 12월 이 비중은 6%까지 다시 늘어났다.

◇ OPEC, 원유 감산 정책 놓고 딜레마

석유수출국기구(OPEC)도 최근 유가 상승세는 원유 공급이 부족하기보다 투기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OPEC은 펀더멘털 상으로는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로 수요가 감소하고 있어 감산이 필요하지만 유가가 급등하고 있어 이도 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에너지 정책 연구 재단의 이코노미스트인 로렌스 골드스타인은 "시장이 투기 세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기 때문에 유가가 3자리 숫자를 기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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