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도 휘발유 소비 줄인다

머니투데이 박성희 기자 2008.03.04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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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국제유가가 미국인들의 기름 소비를 줄이고 있다.

휘발유 가격이 급등하고 경기 침체 우려가 더해지면서 기름 아까운 줄 모르던 미국인들이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생활 습관을 바꾸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6주 동안 미국의 휘발유 소비는 일년 전 같은 기간보다 평균 1.1% 줄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 정유시설을 강타했던 2005년을 제외하고 16여년만에 최장기 감소세다.



휘발유 소비가 줄어든 것은 유가가 빠른 속도로 상승하는 데다가 미 경기 침체 우려 속에 미국인들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가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3일 뉴욕 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4월물은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103.95달러까지 급등했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역대 최고가인 103.76달러(1980년 봄)를 웃돌아 이미 역사적 고점을 뛰어넘었다.



이에 따라 지난 달 25일 마감한 한 주동안 휘발유 가격은 갤론당 3.13달러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1월 2.24달러에서 무려 40% 뛴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휘발유 소비가 많은 여름 휴가 시즌 휘발유 가격은 4달러까지 오를 전망이다.

◇ 지난 5년간 기름값 뛰어도 끄덕없던 미국인들이...


사실 휘발유 가격 상승은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지난 5년동안 휘발유 가격은 꾸준히 상승했지만 가계 부담이 커진다는 소비자들의 원성이 높아질 뿐 수요가 줄어들진 않았다. 월마트에서 쇼핑을 줄일 지언정 미국인들은 어딜 가나 차를 끌고 다녔다.

전문가들은 미국인들이 휘발유 가격 상승은 이례적이고 단기적인 것으로 여겨 생활습관까지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고 지적했다.



2006년 말 보통 휘발유 가격이 2.34달러로 3년 전보다 62% 상승했을 때도 수요는 매년 평균 1.1% 증가했다. 가격 상승세는 4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나타났고 미 경제는 순풍에 돛 단듯 성장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이를 소화해 낼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하루가 멀다하고 미 경기 침체 전망이 쏟아지고 동시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자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인들이 자동차 운행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고통'이 미국인들을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휘발유 가격 상승세가 하루 이틀 사이에 잠잠해지지 않고 계속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면서 여유롭게 기름을 쓰던 습관을 버릴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아담 로빈슨 리먼 브러더스의 애널리스트는 "미국 자동차 운전자들이 세계에서 소비되는 9배럴의 원유 가운데 1배럴을 소비해 왔고 이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속도로 수요가 늘지 않는다고 보면 이는 구조적으로 시장이 변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 휘발유 수요 감소, 단기적인 현상일까

전문가들은 국제유가가 상승하는 데다 정유사들이 불안한 원유 공급에 대비해 안정적인 마진을 확보하기 위해 휘발유 가격을 올릴 게 분명해 미국인들의 휘발유 소비는 더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물론 경기가 활황이면 휘발유 소비도 함께 증가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미국 경제성장률이 둔화됐던 1989~1991년 휘발유 소비는 줄었지만 그 다음 해 다시 증가하기 시작해 2007년까지 계속 늘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미국인의 생활방식이 점점 에너지 효율적으로 변하면서 휘발유 수요는 과거보다 느린 속도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형차를 선호하던 미국인들은 연비를 고려해 점점 소형차나 하이브리드카를 선택하고 있다. 2006년 대형차 판매는 전년대비 2.6% 줄었고 지난 해엔 10.5% 감소했다. 지난 1월엔 일년 전보다 26.5% 줄었다. 반면 1월 소형차 판매는 6.5% 증가했다.



자동차 운행 자체가 줄어드는 것도 휘발유 수요 감소에 한 몫 한다.

미국인들은 자동차 운행을 줄이기 위해 일터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가는 추세다. 특히 주택시장 활황으로 교외에 대형 주택 열풍을 일으키던 업체들은 최근 들어 보다 도심에 가깝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편리한 곳에 주택을 건설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자리잡히면 미 경제 성장과 휘발유 가격에 관계없이 앞으로 휘발유 수요 증가세는 둔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 의회예산국에 따르면 휘발유 가격 10% 상승시 단기적으로 소비는 0.6% 줄어들지만 이같은 추세가 15년 이상 계속된다면 약 4% 감소 효과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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