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보험료, 경영악화 원인이라고?

김창엽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2008.03.0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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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의 건강보험이야기④]건강보험료는 사회적 임금

준조세 부담이 커서 기업하기가 어렵다는 소리가 많다. 워낙 종류가 많고 성격도 다르지만, 건강보험료도 준조세에서 빠지지 않는다. 실제 전에는 가입을 피하는 작은 사업장도 꽤 있었다. 액수가 적더라도 부담이 되었던 때문이다.

요즘은 부담이 얼마나 되는지 보자. 2008년 직장 건강보험료는 임금의 5.08%, 그 중 절반은 기업이 나머지 절반은 개인이 부담한다. 2007년 상용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이 268만원이니 기업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는 일인당 월 6만8000원, 일년이면 81만원을 조금 넘는다.



이것뿐이면 언뜻 그리 큰 부담은 아닌 듯도 싶다. 그러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든 기업이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 하는 것도 의심할 바 없다.

그렇다면 건강보험료는 반갑지 않은 부담일 뿐인가. 외국의 한 사례를 참고로 답을 찾아보자. 2005년 6월, 당시 세계 1위의 자동차 생산업체인 GM이 채산성 악화를 이유로 2만 명이 넘는 직원을 해고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자동차의 취약한 경쟁력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지만, 이들의 발표에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것이 있었다. 경영 악화의 한 가지 원인으로 과도한 의료보험료 지출을 지목한 것이다. GM의 발표로는 직원들과 그 가족의 의료보험료와 의료비를 지출하는 것 때문에 자동차 한 대당 1500달러의 생산비용이 더 들었다고 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은 민간보험이 발달해 있고 대부분의 기업이 회사 부담으로 직원을 보험에 가입시킨다. GM뿐 아니라 의료보험료는 미국 기업의 비용 중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고,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미국 기업이 왜 근로자를 대신해서 비싼 보험료를 부담하느냐고 묻는 것은 우문에 가깝다.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면 인재가 핵심이고, 좋은 인력을 뽑기 위해서는 기업의 의료비 부담이 불가피하다.


오죽하면 미국인들은 새 직장을 구할 때 얼마나 좋은 의료보험을 제공하는지를 제일 먼저 물어볼 정도이다. 물론 이런 사정은 미국의 의료비가 그만큼 비싸고, 민간보험을 회사가 들어주는 형태로 의료보장제도가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료보장의 경제학은 원론적으로는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근로자가 제대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인 조건이고, 이는 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사실 건강보험 나아가 사회보험 전체가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제도로 출발했다.

그러니 건강보험료를 ‘사회적 임금’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부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의 대가로 지불하는 또 다른 임금이라는 의미이다.

우리에게 건강보험제도가 없다고 가정하자. 이후 시나리오는 뻔하다. 당장 근로자의 의료비 부담, 또는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비용이 생계비에서 지출되어야 한다. 생계비의 원천이 임금이라면, 생계비 증가는 곧 임금 인상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은 이러한 압력을 완화시키는 완충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건강보험이 기업 경영에 기여하는 바는 명확하다. 근로자의 의료비 지출에 따르는 기업의 부담을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공적 제도가 바로 건강보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의 건강보험료 부담은 피할 수 없으나 효율적인 비용지출이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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