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MB 첫 내각 '낙마-변명의 진화'

머니투데이 배성민 기자, 오상헌 기자 2008.02.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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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첫 내각서 장관 셋·서울시장 낙마…현 내각도 내정자 셋 사퇴

"3개 부처 장관 내정자가 땅투기 의혹 등으로 악화되는 여론 때문에 내정 7 ~ 10일 만에 사퇴했다."(2008년 2월27일)

"3개 부처 장관과 서울시장이 땅투기 의혹과 자녀의 국적 문제 등으로 임명 7 ~ 11일만에 중도 하차했고 후임 장관(시장)이 임명됐다."(1993년 3월8일)



15년의 시간적 간격을 두고 김영삼(YS)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첫 내각 인선이 판박이가 돼 가고 있다. YS가 사실상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고 한나라당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칭했던 만큼 YS와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적 계승 관계라 할 만 하다. 문민정부(군정 종식)과 경제살리기를 깃발로 내걸어 초창기 월등한 지지율과 기대감을 안고 출발한 점도 비슷하다.

하지만 문민정부 첫 조각은 박희태 법무부 장관과 박양실 보사부 장관, 허재영 건설부 장관, 김상철 서울시장(이상 당시 직책)의 사실상 경질성 사퇴로 헝클어졌다. 이명박 정부의 첫 내각도 이춘호 여성부 장관, 남주홍 통일부 장관, 박은경 환경부 장관(이상 내정자)의 자의반 타의반 사퇴로 인사와 검증의 헛점을 남기게 됐다.



들끓는 부정적 여론과 정치권의 설전 등도 상황을 비슷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92년 총선으로 당시 민주자유당이 과반수를 점하고 있었던 상황과 현재 한나라당이 의석수에서는 열세를 보이는 것이 차이가 있긴 하지만 지난해 12월 대선의 압도적 표차로 한나라당의 자신감이 충만한 것을 감안하면 틈새는 미세하다.

하지만 이 같은 비슷한 상황과 달리 뚜렷하게 대비되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낙마한 장관(내정자)들의 해명이다.

딸의 미국 국적 보유와 명문대 특례 입학 등이 문제가 됐던 박희태 당시 장관은 여러 문제 제기에 대해 "모두 사실이며 물의를 빚은데 대해 부끄럽고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 당시 딸이 다니던 학교에 자퇴서를 내기도 했다.


반면 자녀들의 국적(영주권) 문제 등으로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남주홍 전 내정자의 해명은 다소 달랐다. 남 전 내정자는 가족들이 영주권 등을 포기하고 아들은 곧 입대를 시킨다고 했지만 문제제기 초기에는 "영주권 보유가 10여년간 미국생활을 하면서 얻은 것으로 그렇게 큰 죄냐"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또 부동산 투기의혹 등이 불거졌는데도 "부부교수 25년 하면서 재산이 30억이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도 양반"이라는 식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15년 간격의 낙마 사태에서 유사한 점도 있다. 이춘호.박은경 전 내정자와 박양실 전 장관의 경우가 그렇다.

토지와 주택 등 60억원대의 부동산(당시 부채 등을 제외하면 35억원대라고 주장)으로 문제가 커졌던 박 전 장관은 "되팔아 전매차익을 남긴 사실이 없고 일부는 지인이 사달라고 부탁 마지못해 산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었다. 최근 이춘호 전 내정자가 "건강 우려로 진단을 받은 후 암이 아니라는 결과에 남편이 기뻐서 (오피스텔을) 사준 것"이라는 해명과 박은경 전 내정자의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한 것"이라는 설명과도 맞닿는다.

박양실 전 장관의 보유 토지 중에 경기도 김포의 땅이 있었던 것과 박은경 전 내정자가 김포의 절대농지를 위장전입 등을 통해 사들인 것은 여러모로 비슷하다. 김상철 전 시장이 그린벨트 훼손 논란으로 불법논란에 휘말린 것과 남 전 내정자가 수도권 토지의 지목과 형질 변경 등으로 문제가 된 것도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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